파죽지세다. 1억원 고료의 세계문학상 수상으로 화려하게 이름을 알리더니 곧이어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무려 6주째. 벌써 10만부가 팔렸다.
수많은 영화사와 드라마 제작사에서 눈독을 들인다는 소문이 돌기가 무섭게 드라마 제작까지 결정됐다. 책이 나온 지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벌어진 순식간의 일들이다.
한국문학계의 신데렐라가 된 <스타일> 의 작가 백영옥(34)씨를 만났다. <스타일> 은 서른 한 살의 패션지 여기자가 일과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칙릿(chick litㆍ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트렌디 소설)’. 명품과 다이어트, 치열한 경쟁과 사내 정치, 사랑과 성이 핵심 키워드로 등장하는 이 소비사회의 산물은 패션지에서 기자로 일했던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스타일> 스타일>
작중인물과 작가의 경계가 모호한 듯 보이는, 그래서 이런 저런 궁금증이 생기는 작가는 글쓰기뿐 아니라 말하기에도 재능이 있었다.
- 드라마 제작사 예인이 <스타일> 판권을 샀다면서요? 올 겨울 SBS 방영까지 결정됐는데, 직접 드라마 대본도 쓰시나요? 스타일>
“지금 얘기하고 있는 중이에요. <스타일> 은 워낙 많은 제작사에서 제안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구요. 열여섯군데? 방송3사와 굵직굵직한 제작사는 다 들어왔다고 들었어요. 대본 집필은 제안은 받았는데, 워낙 복잡한 일이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스타일>
- 인세는 어떻게 돼요?
“1억원이 고료 개념이잖아요. 이게 상금이 아니라 10만부에 대한 선인세를 받는 거예요. 그래서 10만부 넘어가면 그때부터 인세가 발생해요.”
- 세계문학상은 늘 1억원이라는 고료가 화제 1순위인데, 돈은 들어왔어요? 통장에 찍힌 돈을 보는 기분이 어땠어요?
“제 생에 그렇게 큰 돈이 들어온 적이 없으니까 기분이 좋죠. 통장에 찍히니까 그때 실감이 나더라구요.”
- 뭐하셨어요, 그 돈으로?
“막상 돈이 생기면 특별히 뭘 해야겠다는 게 안 떠올라요, 오히려. 사실 요즘은 책이 한 권 나오면 작가가 같이 뛰어줘야 하는 부분이 되게 많아요. 인터뷰도 많이 해야 하고, 여러 매체에 홍보도 해야 하고, 하다 못해 사인회도 하고, 저자와의 만남도 해야 되고 하니까. 그런 걸 열심히 하다 보니까 두 달이 훌렁 다 지나가서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을 안 해봤어요.”
- 백이나 구두 좋은 거 하나 사셨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하하. 제가 책을 그렇게 써서 많이들 물어보세요. ‘명품 좋아하세요?’ 하고. 사실 저는 쇼핑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해요. 소설보다 앞서 나온 제 산문집 제목이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인데 여기서 마놀로 블라닉이라는 브랜드는 하나의 기표, 상징이에요. 말하자면 그것은 현대여성들의 두 가지 욕망을 표현한 거였어요. 마놀로>
흔히 사람들은 마놀로 블라닉을 신고 뉴욕 소호 같은 곳을 걷는 게 스타일리시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아니에요. 저한테 더 매력적인 사람은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거나 여권도 무슨 비싼 에르메스 여권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람보다는 그냥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자유롭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반면에, 백화점 1층에 딱 들어갔을 때 나는 냄새 있잖아요. 뭔가 일상이 제거된 느낌. 일상이 팍팍하고 괴로웠는데 거기에 들어가면 온갖 향수냄새들이 나면서 뭔가 일상이 거세된 듯한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 것도 저는 사랑하거든요.
말하자면 두 가지 욕망이 동시에 공존하는 거죠. 21세기적 욕망이라는 것 자체가 단편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너무 복합적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 두 가지 욕망이 충돌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구요. 된장녀로 몰아붙이든가 아니면 헬렌 니어링 같은 자연주의자로 몰아붙이든가. 그 사이에 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소설을 보면 실제 쓰고 사고 입지 않고서는 나오기 어려운 표현들이 많던데요.
-(웃으며)저도 명품 좋아해요, 당연히.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돈이 많아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그럴 돈은 물론 없지만, 그냥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자기만족적인 거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명품이 대대로 물려받을 수 있어서, 내지는 장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서 산다는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거든요. 명품의 로고를 사는 거고, 그 브랜드의 가치를 사는 거예요. ‘나는 명품이 좋다’라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하다고 생각해요. <섹스 앤 더 시티> 의 주인공 캐리 브로드쇼 같은 삶을 꿈꾸는 여자들은 남자들의 지갑을 털어내는 멍청한 된장녀라고 증오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전 삶의 한 방식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단순히 된장녀라는 한 덩어리의 명사로 폄하하는 것은 생각을 좀 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섹스>
반포고와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그는 참으로 다양한 직업을 거쳐 작가라는 자리에까지 왔다. 명지대 대학원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다가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들어간 후 인터넷 서점 북에디터로도 일했고, 신문과 잡지에 트렌드에 관한 칼럼을 쓰다가 하퍼스 바자라는 패션지에 기자로 특채됐다.
- 패션지에는 얼마나 계셨어요?
“패션지에는 사실 오래 있지 않았어요. 칼럼을 많이 썼고, 조직에 몸 담고 일한 건 1~2년 정도예요. 사실 직업이 다양했죠,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하지만 다 글을 쓰는 직업이었어요. 카피든 인터뷰 기사든 리뷰든. 좀 목말랐던 거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은데 그걸 담아내기에는 한 줄짜리 카피도, 열두매짜리 리뷰도 너무 짧고, 30매짜리 인터뷰기사도 너무 짧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1,500매짜리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이야기의 형식,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담는 그릇이 바뀌었을 뿐이죠.”
- 전업작가로 들어선 건 언제부터예요? 대단한 결의가 있었을 것 같은데.
“등단하고 나서요. 2006년 문학동네 가을호에 단편 <고양이 샨티> 로 등단했거든요. 너무 지쳤었어요. 나를 계속 퍼내는데 채워지지가 않으니까 늘 너무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고양이>
내가 보여주는 건 30매짜리 기사 하나와 화보 몇 장으로 나타나지만 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투자하는 시간, 수백 통의 전화를 걸어야 되고, 수없이 시안 미팅을 해야 되고, 많은 스태프들과 만나서 의견을 조율해야 되고, 거기서 생길 수 있는 돌발적인 상황들은 늘 존재했고…. 게다가 배우라는 사람들은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핸들링하는 게 쉽지 않아요.
인터뷰를 못하겠다는 경우도 있고, 인터뷰 하다가 나가버리는 배우도 있고. 그런 데서 오는 스트레스, 자기 능력을 좋은 화보를 찍고 좋은 인터뷰 기사를 쓰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거예요. 기자를 그만두니까 전화를 안 받아서 너~무 좋았어요. 스트레스도 적고.”
- 직장을 오래 다니다 보면 안정된 수입이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깊어지는데 겁나지 않았어요?
“제 신조는 ‘하고 싶은 일만 하자’가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자’예요.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지만 적어도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살아야 될 권리는 있지 않나. 그러니까 당연히 돈은 많이 못 벌죠. 많이 못 버는데, 하지만 저는 그런 대로 또 살아요.(웃음)
소설가가 된다는 건 돈을 많이 버는 거랑은 상관 없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고. 또 제가 여러 군데서 일을 했는데, 고생 끝에 낙이 오지 않아요. 고생 끝에 오는 건 병이에요. 사람이 너무 고생하고 찌들면 망가지더라구요. 뭔가 재충전할 필요가 있는 시기에 저는 운 좋게 등단도 되고…. 근데 운 좋게 등단이 아니에요. 저는 13년을 계속 떨어졌기 때문에….
참 신기한 게 그게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저한테 등단이라는 건 꿈이에요. 목표라는 건 그 목표에 도달을 못하면 포기하고 다른 목표를 찾고 그런 리셋이 가능한데,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라는 어렸을 때부터의 꿈은 그게 안 돼요. 아마 이번에 실패했어도 내 몸이 성한 그날까지 계속 쓰고 있었을 거예요. 남편은 ‘넌 양로원에 가서도 쓰고 있지 않았겠냐’ 그러는데 이거 악담 아니에요?”(웃음)
- 결혼하셨어요? 누구랑요?
“이제 7년차예요. 대학교 4학년 때 만나서 연애도 오래 하고 결혼한 지도 오래 됐고. 포토그래퍼예요.”
- 직장생활을 오래 한 게 글 쓰기에 도움이 좀 됐나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신춘문예에 원고를 보냈는데 계속 떨어지고, 직장 다니면서도 많이 쓰진 못했지만 12월이 되면 또 한 번씩 보내보고, 또 떨어지고 그랬어요. 그게 참 슬펐어요, 서른 살 전까지는. 이런 얘기를 하면 눈물이 막 쏟아졌어요. 제 동기들은 대부분 다 소설가가 됐거든요. 그런 게 사실은 좀 가슴 아픈 일이죠.
어쨌든 소설로 ‘쇼부’가 안 나니까 직장을 계속 다니게 되는 거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많이 떨어지고, 직장생활도 하고, 다양한 글을 써 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본 게 인생을 좀 총체적으로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소설이라는 게 어차피 소통의 방식이나 관계의 방식을 들여다보는 거잖아요.”
한국문단이라는 제도 안에서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는 확연하다. 하지만, 경계선의 굵기와 선명도는 더딘 속도로나마 흐려지고 있다. 정이현이 슬쩍슬쩍 그 선을 넘었고, 김영하도 보폭이 자유로워 보인다. 문단과 대중의 단절 속에서 이미 공지영이라는 걸출한 스타작가를 경험한 바 있는 한국문단은 그래서 이 신예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그는 제2의 공지영이 될 것인가, 문단 안으로 들어올 것인가, 그 경계를 해체할 것인가.
- <스타일> 이 칙릿소설으로 불리는 데 불만 없어요? 스타일>
“칙릿이니까요. 사람들이 칙릿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들이 있어요. 칙릿은 장르소설이고, 저는 장르소설을 쓴 거거든요. 보통 소설가가 첫 소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해 쓰잖아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칙릿이라는 장르에 어느 정도 맞았고, 장르간의 착종이 있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미스터리 요소도 가미한 거예요. 저는 칙릿이 마치 폄하된 하위장르처럼 말하는 데에는 동의 못하겠어요.
칙릿의 기원은 제인 오스틴이에요. 칙릿의 전형이죠. 제 소설은 정확히 말하면 제인 오스틴에 대한 오마주예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건 제 취향이에요. 선과 악이 대립하면 꼭 선이 승리하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오해하지만 어떤 이해의 과정을 거치는 굉장히 명징한 세계.
그런데 21세기적이고 현대적이라는 것의 특징은 애매모호하고 열린 결말의 특징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제 소설은 철저히 닫혀있거든요. 제가 뒷부분에서 좌왁 정리를 하잖아요. 제가 그런 걸 읽고 싶었어요.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연애라는 건 보통 오해에서 오해로 끝장나는 게 대부분이고, 아시다시피 직장생활에서 상사와의 갈등이 봉합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명료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런 명료한 세계가 주는 간결함이나 소설적 쾌락이 있어요. 소설에서만큼은 그걸 잊고 위로 받고 싶은 거예요. 오리지널리티의 문제가 아니에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전.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에서 말한 이외의 플롯이라는 게 별로 존재하지 않아요.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고, 결국 21세기는 퀄러티의 문제다, 시학>
있는 이야기를 그 시대에 맞게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 당대의 욕망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새로움에 관해 말하자면 저는 쓸 게 없어요. 이미 있는 전형적인 인물이고, 전형적인 이야기죠. 거기에 21세기적 해석을 가미했다, 21세기에 사는 서울 여자들의 욕망과 연애에 대한 얘기를 제 방식대로 풀어낸 거예요.”
- 반론을 해볼게요. 제인 오스틴과 백영옥이라는 작가 사이에는 200년의 시차가 존재해요. 오스틴의 위대함은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했다는 데에도 있는데, 200년간 반복돼서 첫 장만 열어도 어떻게 끝날지 다 알겠는 소설을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제인 오스틴뿐 아니라 19세기 러시아 소설에도 장르의 규칙이라는 건 있어왔어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보면 19세기 여자들이 하다 못해 땅이 몇 에이커고 하인이 몇 명이고 얼마의 유산을 물려받고 하는 당대적인 것들이 담겨져 있어요. 뼈대만 비슷하지 콘텐츠 자체는 다르거든요. 저는 이런 식의 연애소설은 조금씩 변종되면서 언제까지든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의미는 독자들이 만드는 거예요. 작가가 만들 순 없어요.”
- <스타일> 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내 이름은 김삼순> , <브리짓 존스의 일기> 같은 작품들과 비슷하다는 의견들이 많아요. 하이틴로맨스 같다는 얘기도 있고. 브리짓> 내> 악마는> 스타일>
“다 나올 수 있는 반응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뿐이 아니고 어린 김수현이 쓴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드라마 같다는 얘기도 있고. 이 소설은 호불호가 강할 수밖에 없어요. 한국사회에는 사람들의 정조 자체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소설들을 선호하는 게 강해요. 그것과 반대되는 얘기를 했을 때 반대급부적인 거부감 같은 게 생기죠. 거기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장르 자체에 대한 친숙함 때문에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는 측면들도 있는 것 같아요.”
- 인터넷 리뷰들을 보다 보면 백영옥을 질투하는 사람들이 독자들 중에도 있어요. 1억원이나 탔다는데 얼마나 잘 썼는지 보자, 베스트셀러 1위라는데 재미있는지 보자, 질투 난다, 부럽다, 이런 반응들이 많아요. 제2의 공지영, 한국문학의 신데렐라라는 얘기도 들리고요.
“1억이라는 돈 때문에 질투할 수 있어요, 분명히. 문학상에서 1억원이라는 건 상징적인 액수니까. 신데렐라라는 말은 듣고 있으면 참 재밌어요. 13년이나 줄줄이 떨어졌던 사람한테…. 온갖 신문사에 투고를 하고, 떨어지면 ‘신문사절’이라고 대문에 써붙이고, 그러다 보니 볼 신문이 없어질 지경이 돼서 신문도 안 봤어요.
글쎄요, 제 경력 때문에 그런가요? 자기가 다닌 패션지 얘기를 소설로 써서 뭔가 펼쳐진 것 같으니까 자기가 아는 얘기 쉽게 써서, ‘날로 먹네?’ 이런 느낌?(웃음) 근데 인생에 날로 먹고 거저 먹는 건 없거든요. 제가 재능이 있어서 빨리 등단했고, 소설만 썼다면 아마 이런 소설을 못 썼을 거예요.
참 웃긴 게 다음달에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가 개봉을 해요. 그런데 저한테 너무 전화들을 많이 하시는 거예요, 코멘트해달라고. 거기에 나오는 캐리 브로드쇼도 칼럼을 써서 그런지 저한테서 그런 모습을 보시는 거 같아요. 저는 캐리처럼 높은 구두도 못 신고 다니고, 캐리라는 캐릭터도 좋아하지 않아요. 많은 한국 여성들이 동경하는 캐리 같은 삶을 제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닐까요?” 섹스>
-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니까요. 많은 분들이 이 소설이 자전적인 소설 아니냐고 물으시는데 아니에요. 그렇다면 자서전을 썼지 왜 소설을 썼겠어요. 유독 이 소설에 대해서는 소설 속 이서정이라는 인물과 작가를 동일시하는 것 같아요.”
- 저는 백영옥이라는 작가로 인해 두 가지 세계의 화해가 가능할지 주목해보고 싶어요. 대중들을 끌어안은 채 한국문학의 영역을 확장해서 분리돼 있는 문학간의 경계에 가교를 놓는 게 가능할지 궁금해요.
“제 소설이 기존 문단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소설이 된 건 맞아요. 그래서 이 소설을 반대했던 분들이 많이 계세요. 저는 받아들여요, 그런 부분에 대해선. 그런 걸로 상처 받지는 않아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학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자기 편견을 드러내지 않는 문학은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 안 해요,
저는. 나는 쇼핑 좋아, 명품 좋아, 라고 말하면 욕 먹어요. 그래서 명품이 좋다는 얘기를 온갖 수사와 명분을 에둘러서 우회적으로 하는데 전 그건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연세 많으신 분들은 ‘이게 문학이야? 이게 소설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어?’ 이렇게까지 얘기하세요.
내년쯤에 문학동네에서 단편집이 나와요. 좀 걱정되는 측면이 있어요, 장편과 너무 달라서. 계간지에 실린 작품들인데 <스타일> 을 너무나 싫어하고 비판하셨던 분들이 이 단편집을 보시면 생각이 좀 달라지실 거예요. 스타일>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구요. 단편이 요구하는 생략과 압축의 미학, 장편의 대중성, 이 두 마리를 다 잡은 작가로 이미 정이현이라는 선례가 있어요. 저는 조금 더 범위가 넓은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소설도 쓰고, 드라마도 쓰고, 영화도 쓰고…. 그런 측면에서는 시도를 해본 분들이 없으니까.”
- 앞으로 어떤 계획들이 있어요?
“이미 다섯 권 정도 쓸 책을 다 정해놨어요. 1년에 적어도 한 권은 내자. 백영옥이라는 작가는 일생일대의 걸작을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최소한 제법 읽을 만한 읽을거리를, 시간이 아깝지 않은 소설을 부지런히 쓰는 작가다, 그런 소릴 듣고 싶어요. 제게 소설이 줄 수 있는 가치가 삶보다 크지는 않아요.
문학에 대해서 엄숙하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즐거운 즐길거리로 생각하면서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좋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싶어요. 거창한 문학상보다도 ‘북에디터들이 뽑은 올해의 스토리상’, ‘서점 직원들이 뽑은 올해의 캐릭터상’ 같은 거 받으면서요.”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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