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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학포럼 2008 폐막/ '소멸서 생성' 주제 고은-랜드라-리카바 3國 시인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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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학포럼 2008 폐막/ '소멸서 생성' 주제 고은-랜드라-리카바 3國 시인 좌담

입력
2008.05.30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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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엔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시인 고은(한국), 렌드라(인도네시아), 호세 라카바(필리핀)가 포럼 주제인 ‘아시아, 소멸의 이야기에서 생성의 이야기로’를 주제로 좌담을 가졌다.

‘동남아시아의 김지하’로 불리는 렌드라는 일상 언어로 조국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휴머니즘 회복을 부르짖어온 시인으로, 1978년 반정부 시를 발표해 7년간 창작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한 라카바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영어를 버리고 토속어인 타갈로그어로 시 창작을 하고 있다.

렌드라=식민지 역사 자체가 아시아 문화 소멸의 역사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면서 처음엔 네덜란드어를 못 쓰도록 했다. 고급한 문화로의 접근을 차단한 것이다. 후에 네덜란드어 교육을 하자 이번엔 피식민지인의 사고 방식과 개념이 서구적으로 변했다.

라카바=필리핀은 스페인 300년, 미국 50년의 통치를 받았다. 이로 인해 기존 문화적 토대가 사라지는 한편으로, 식민 지배 영역을 바탕으로 국가 정체성이 생기기도 했다. 소멸과 생성은 모순적이면서도 이처럼 동시 발생한다.

고은=소멸이란 주제를 너무 역사ㆍ정치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소멸은 아주 예술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소멸 없는 자리에 무엇을 새로 만들 수 있겠나.

렌드라=식민지의 가장 큰 폐해는 지식 불균등을 제도화해 피식민지인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익히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더 근본적 문제는 자기를 확립하는 게 좋은 것이란 유럽적 사고 방식을 심은 점이다.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민족이 제가끔의 언어를 갖고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충분히 소통해왔다. 하지만 이후론 ‘하나의’ ‘민족적인’ 문화를 가져야 한다는 조급증에 시달렸다. 1920년대 민족문학 확립 운동도 마찬가지다.

고은=아시아는 실체가 아니라 가상의 허브다. 하지만 작가들이 상상력을 투입할 수 있는 허브고, 여기서부터 아시아는 실체화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아시아는 구미인들이 자기 필요에 의해 경계를 설정한 것에 다름아니다. 난 그런 아시아를 거부한다. 아시아를 ‘꿈의 아시아’로 정의하고 싶다.

렌드라=글쎄. 아시아는 공고한 사실이자 객관적 실체 아닐까. 현재 구역화된 아시아가 없다면 꿈이니 허구니 하는 말도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일테면 한국문학이 번역되면서 우리에겐 한국이 실체로 다가온다. 그런 공고한 실체들이 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한 통로가 되지 않겠나.

라카바=문학에 앞서 대중문화가 아시아를 생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필리핀엔 타갈로그어로 번역된 한국 드라마ㆍ영화가 상영되고, 한국 외에도 중국ㆍ일본 등 아시아 대부분의 대중문화가 들어왔다. 대중문화가 이미 시작한 것을 문학도 해야 한다.

고은=아시아는 유럽과 달라 정치적 동질성을 회복할 수 없다. 각자, 혹은 서로간에 무수히 얽힌 상처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린 꿈을 가져야 한다. ‘아시아들’로 존재했던 우리들이 저마다 지역 정체성을 갖고 만나서 합의를 봐야 한다. 불교, 유교 등 고등 종교를 공유했던 고대의 보편성에 대한 기억이 새로운 아시아 생성에 보탬을 줄 것이다.

렌드라=이번 만남이 그런 합의의 시작이다. 아시아는 복수형이다. 차이가 굉장히 많은 집단인데 그 차이가 귀중한 자산이다. 나는 내 소유의 땅에 무대를 만들고 온갖 사람을 불러 공연 행사를 갖는다. 그런 자리에서 아시아가 가진 예술이 정말 많음을 새삼 깨닫고 활력을 느낀다.

라카바=요즘 한국 단편들을 영어로 번역한 선집을 준비 중이다. 나는 타갈로그어로 작품을 쓰고 있지만, 영어로 쓰인 필리핀 문학 역시 아시아 문학의 소중한 자산이다.

포항=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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