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청계광장에는 깃발과 머리띠, 과격한 구호 대신 장삼이사(張三李四) 평범한 시민들의 진솔한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다.
청계광장 촛불문화제 무대에 올라 자유발언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거대담론’ 대신 자신이 일상 생활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한아름 안고 올라온다. 어린이집 교사는 아이들의 먹거리를 염려하고, 대학생들은 “우리가 맨먼저 미국 쇠고기를 먹는 것 아니냐”는 군대 간 친구의 걱정을 전한다.
“아이 걱정, 친구 걱정에 나왔다”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일수록 참가자들의 호응은 커지게 마련이다. 28일 집회에서 60대 남성이 어릴 적 경험과 평소 생각을 중심으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방침을 조목조목 비판하자 곳곳에서 “앵콜” 세례가 쏟아졌다.
일반 참가자들이 청계광장에 나온 계기도 대부분 ‘생활 밀착형’이다. 아이 넷을 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사는 주부 최모(38)씨는 “TV를 본 아이들이 ‘엄마 왜 사람들을 저렇게 잡아가?’라고 물었을 때 해줄 말이 없어 직접 데리고 나왔다”고 참석 이유를 설명했다.
최씨는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나중에 자신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될 아이들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고교생 김모(17)군은 “요즘 친구들과 하는 대화 소재는 온통 광우병 쇠고기뿐”이라며 “우리더러 철없이 놀러 왔다고 하는 어른들도 있는데, 이런 일 때문에 여기에 선 게 가슴 아플 따름”이라고 말했다.
촛불소녀부터 70대 노인까지
학교를 마치고 온 중고생, 연인과 함께 한 20대 직장인, 서류가방을 둘러맨 중년의 넥타이부대,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주부, 농촌에서 상경한 60대 촌로….
집회 참가 세대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그들이 광장에 한데 모여 다양한 나이대의 경험담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촛불집회가 시민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고 있는 요인이다. ‘먹거리 걱정’이라는,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이슈가 경제ㆍ사회적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 소속으로 광화문 거리 응원을 주도했던 회사원 박모(28) 씨는 “그때와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거리의 시민들이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온 주부 안모(63ㆍ여) 씨는 “유신시대의 시위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오늘 집회에서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며 “예전처럼 무조건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게 아니라, 정부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지적하고 있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1960년 4ㆍ19 혁명 당시 시청 앞 시위에 참석하기도 했다는 임모(75)씨도 “과거에 비해 얼마나 문화적인 집회인지 지켜보라”며 “얼마나 기특한 일인지 동참을 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가두시위는 우려되는 부분
경찰의 고민도 바로 이런 점에서 시작된다. 먹거리가 걱정돼 자발적으로 참석한 사람들을 상대로 배후와 주모자를 논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가족ㆍ친구 단위 참석자와 여성ㆍ노약자가 뒤섞인 집회 현장에서 위법 행위자만 가려 연행하기도 어렵다. 연행해 봐도 전부 단순 집회 참석자들이어서 결국 석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발적 동기에서 시작된 촛불문화제가 심야 가두 시위로 이어지는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행법을 어기면서까지 차도를 점거해 다른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비난을 살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실제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나 언론은 촛불문화제 참석자들이 도로로 진출하기 시작하자 “운동권 단체들이 촛불집회의 순수성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영창 기자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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