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사장, CEO, 그리고 대통령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사장, CEO, 그리고 대통령

입력
2008.05.30 02:24
0 0

이명박 대통령의 ‘CEO리더십’은 분명 매력적 수사(修辭)이지만, 애초부터 우려도 많았다. 더구나 지금처럼 집권 100일도 못돼 리더십 위기란 말이 나올 정도라면, 이쯤에서 ‘CEO 대통령’ 구상도 큰 손질이 필요해 보인다.

비판은 크게 세 갈래다. 첫째, ‘CEO 대통령’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보는 시각.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경영과 국민통합ㆍ민생안정을 향한 국정운영은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CEO가 회사 운영하듯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려서는 곤란하다는 논지다.

둘째, CEO라고 해서 다 같은 CEO는 아니며 유형, 즉 ‘판매형 CEO’인지 ‘수주형 CEO’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판매형 기업은 기본적으로 ‘고객 지향적’이다. 불특정다수의 고객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만들며, 판매 후에도 지속적인 고객 서비스관리가 필수적이다. 반면 수주형 기업은 ‘발주처 지향적’이다. 고객이 있다면 딱 하나, 발주처가 유일하다. 이런 수주형 기업에게, 판매형 기업식의 고객 마인드, 서비스 마인드는 태생적으로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목표도 다르다. 판매형 기업으로선, 100대 목표를 달성했다 해도 101대를 판 것과 200대를 판 것은 의미가 다르고 목표달성에 실패했더라도 99대를 판매한 것과 50대밖에 팔지 못한 것 또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몇 대를 팔았느냐 보다 어떻게 팔았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주형 기업엔 이런 복잡한 분석이 필요 없다. 평가 잣대는 오직 하나, ‘수주를 했느냐 못했느냐’다. 당연히 과정 보다는 결과를 중시할 수 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대표적 수주형 기업(건설사) CEO 출신이다. 요즘 들어 “너무 성과에 조급해 한다” “국민들의 마음을 못 읽는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도 아마도 이런 배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의 고객은 국민인데, ‘수주형 CEO’ 출신이다 보니 고객의 예민한 마음까지 읽어야 하는 판매형 CEO의 DNA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셋째, 사장(회장)과 CEO 역시 다르다는 주장이 있다. 사실 이 대통령이 국내외 건설현장을 누비며 기적과 신화를 만들어가던 시절, 우리 기업에 CEO란 개념은 없었다. 그저 최고위 직급으로서 사장(회장)만 있었을 뿐이다.

수직성 강한 옛 한국적 기업풍토에서 사장(회장)은 ‘리더’ 보다는 ‘보스’에 가까웠다.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최정점이었다. ‘나를 따르라’는 외침은 보스의 핵심자질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CEO는 ‘가장 높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의 중심’이다. 기본적으로 분권적이기 때문에 ‘나만 믿어라’는 식으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CEO밑에 CFO(최고재무책임자) CHO(최고인사책임자) CCO(최고소통책임자) 등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가진 다수의 참모들을 둬 역할을 분담시키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이 점에서 이 대통령은 옛 ‘사장(회장) 리더십’을 ‘CEO 리더십’으로 혼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CEO 대통령’론의 취지는 백번 공감한다. 하지만 대선국면의 정치구호로선 몰라도 집권 후 실천모드로선 이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수주형 CEO’ 아닌 ‘판매형 CEO’, ‘사장 마인드’ 아닌 ‘CEO 마인드’로의 발상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성철 경제부 차장 sclee@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