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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한민국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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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한민국이 아프다

입력
2008.05.2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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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프러시아에 살았던 루돌프 비르쇼는 의학과 정치 양쪽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흔치 않은 사람 중 하나다. “모든 질병은 인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세포에서 시작한다”는 그의 세포병리학은 의학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위대한 발견 중에서도 무척 중요한 성과로 꼽힌다.

인체가 자율적이면서도 상호 협조하는 세포들이 공생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은 현대의학의 중요한 성과다. 이 생각은 이후 의학과 정치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국가는 자율적이면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상생하는 시ㆍ공간이기 때문이다.

소통 안돼 민주주의에 병 생겨

그는 질병의 원인을 사회적 환경에서 찾는 사회의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전염병이 유행하는 지역을 조사하고 돌아와 제출한 보고서에서 그가 제시한 처방은 놀랍게도 위생과 영양상태의 개선이 아닌 정치적 자유의 신장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 경제정책의 전면적 개혁이었다.

그에게 사람의 몸은 세포들의 공화국이다. 이 공화국이 이루어낸 세포들의 민주주의가 바로 건강이다. 민주주의(건강)는 국민(세포)들의 자유와 그들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다. 국가는 확대된 몸이며 정치는 의료의 연장이다. 국가의 병은 국가의 기본 단위인 국민의 뜻이 제대로 소통되지 않아서 생긴다. 따라서 그 병을 고치려면 먼저 국민이 그 뜻을 제대로 펼 수 있도록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와 정치의 교묘한 결합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이라는 세포들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큰 몸이다. 그런 대한민국이 지금 많이 아프다. 민주주의(건강)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후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고소영이라고도 하고 강부자라고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대다수 국민의 자유와 소통을 방해한다. 먹을거리의 안전을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은 강제로 연행되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 부당성을 지적하며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대운하는 온갖 꼼수를 부려가며 기어이 팔 기세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자신들이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어떤 머슴이 주인이 하지 말라는 일을 몰래 해놓고서 나무라는 주인을 그렇게 윽박지른단 말인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무얼 먹여 키운 지도 모르는 소를 잡아와서는 그 고기를 먹지 않으면 그 주인이 우리를 해코지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단 말인가? 그들은 결코 머슴이 아니다. 지주 편에서 소작농을 수탈하고 괴롭히는 마름이라면 또 모를까.

이 병이 소통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말을 듣기는 한 모양이다. 그래서 마지못해 소통문제에 있어 ‘다소’ 부족한 점이 있었단다. 하지만 소통이 쌍방향이라는 사실은 아예 모르거나 모른 체한다. 그래서 말은 소통의 부족이라고 하지만 정작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은 좀더 일찍 방송사를 장악해 여론을 통제하지 못한 사실이다.

아직도 언론기관에 수시로 압력을 가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공영방송에 낙하산을 떨어뜨리지 못해 안달인 행태가 그 증거다. 쌍방향 의견교환이 아닌 정보의 통제를 소통으로 아는 국어실력으로는 절대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쌍방향의 중요성 아직도 몰라

소통에는 뜻이 없는 정부가 민심이 들끓자 마지못해 미국 현지 도살장에 보낸 조사단이 불과 열흘 동안의 겉핥기 조사 끝에 가져온 결과가 ‘아무 문제도 없더라!’일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까? 정상회담이 있기 몇 시간 전에 벼락치기로 끝낸 협상이 국민의 뜻을 반영한 것일 수 없다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 물류에서 관광으로, 다시 수질개선으로 말을 바꿔가며 대운하를 고집하는 것도 결국은 국민과 소통할 뜻이 없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우리 몸 속의 세포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공존해야만 우리가 건강할 수 있듯이 건강한 민주주의는 살아 있는 민의가 자유롭게 소통해야만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건강을 더 이상 의료와 정치의 기본도 모르는 강부자와 고소영들에게 맡길 수 없는 이유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ㆍ 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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