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 영변은 지금이야 북한의 핵 개발 단지로 악명이 높지만 원래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유물ㆍ유적들로 이름난 고장이다. 고구려 때부터 쌓았다는 영변 철옹성을 비롯하여 영변 남문, 육승정, 서운사, 천주사 등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하다.
명승지로는 관서팔경에 드는 약산 동대가 대표적인데, 봄철 온 산을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진달래가 특히 아름답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에 나오는 ‘영변 약산의 진달래꽃’도 바로 이곳의 진달래다. 동대의 제일봉에 오르면 동대를 감아 도는 구룡강과 서해로 흘러 드는 청천강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진달래꽃>
▦ 영변은 옛날부터 질 좋은 비단 산지로도 유명했다. 이곳 사람들은 뽕나무 품종 가운데 하나인 ‘영변뽕’을 육종해낼 정도로 누에치기에 열심이었다. 북한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이곳을 비단 생산단지로 육성해 고급 비단천을 생산해 내고 있다. 약산단으로 불리는 비단천도 그 중에 하나다. 약산의 진달래꽃과 단풍 무늬가 화려해 여성들의 치마저고리 감으로 인기가 높고, 수출품으로 국제시장에서도 호평을 받는다고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은근한 무늬의 구룡단도 고급 비단천이다. 둘 다 현지를 방문한 김일성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북한이 세계에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대집단체조ㆍ예술공연인 ‘아리랑’ 2008년도 판에 ‘영변의 비단 처녀’를 새롭게 삽입한다는 보도다.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26일자에 따르면 올해 공연될 아리랑은 다른 장면들을 줄이고 2장 5경에 영변군을 무대로 한 작품이 들어간다. ‘조선로동당의 인민생활 제일주의 방침을 예술적 화폭에 담았다’는 것인데 영변견직공업소에서 일하는 북한 처녀들을 부각시킬 모양이다. 다른 한 편으로 북한이 대내외에 영변을 핵무기단지가 아니라 평화의 상징인 비단 생산지로 내세우고 싶은 뜻도 있어 보인다.
▦ 영변은 조만간 또 다른 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게 돼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북핵 신고와 미국의 정치적 상응조치가 잘 마무리되면 영변 5MW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이벤트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TV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실황중계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영변 핵 괴담의 끝은 아닐지 모르지만 북한이 핵 포기의 길로 한 발을 더 내딛는 것임은 분명하다. 영변 약산에 올라 진달래꽃 구경을 한 뒤 약산단과 구룡단 비단천을 한 감씩 끊어서 돌아오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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