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료계가 ‘대체 조제’를 놓고 몇년째 논쟁을 벌이고 있다. 대체 조제란 예컨대 의사가 고혈압 환자에게 다국적제약사의 노바스크라는 오리지널 약을 처방해도, 약국에서 그와 상관없이 노바스크와 같은 약효 성분(암로디핀), 동일한 용량을 가진 수십개의 국내 제약사에서 만든 제네릭 약(카피 약)으로 조제해도 되는 것을 가리킨다.
‘성분명 처방’도 거의 같은 개념으로 의사가 처방을 할 때부터 아예 특정 상품명을 쓰는 것을 금하고 암로디핀과 같이 약효 성분의 이름만을 기재하게 하는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제네릭 약이 오리지널 약과 성분ㆍ함량이 같고,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에 어느 회사에서 만들었건 오리지널 약과 비교해 약효와 안전성에서 차이가 없고, 따라서 건강보험 약제비를 절감하기 위해 성분명 처방을 당장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약산업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긴 유럽과 북미에서는 의사의 성분명 처방 빈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 중 몇몇 나라는 의사가 상품명으로 처방해도, 약국에서 같은 성분의 제네릭 약으로 대체 조제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한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비싼 오리지널 약의 소비가 줄어 약제비가 절감됐다는 보고들이 있다.
그런데 그 이면에서는 환자 안전이란 관점에서 우려할 만한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1988년 미국 보스턴시립병원에서는 특정 심장질환 환자들이 평생 먹어야 하는 항응고제를 오리지널 약에서 값이 싼 제네릭 약으로 바꿨다가 약의 부작용이 늘면서 환자들의 내원 횟수와 입원기간도 따라서 늘어 오히려 전체 의료비가 증가했다.
또 환자 동의 하에 대체 조제를 허용하는 노르웨이에서 2006년에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 제네릭 약으로 대체 조제를 받은 환자의 36%가 심각한 부작용을 겪거나 약효가 떨어졌다고 한다.
이외에도 오리지널 약에서 제네릭 약으로 대체 조제를 받은 간질 환자가 약효가 부족해 경련발작을 일으킨 사례라든지, 심부정맥 치료제와 갑상선 호르몬제 등에서 대체 조제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 사례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또 소화제나 바르는 크림 등과 같이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따로 하지 않는 약에서도 그 효과가 제조사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는 사례들도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제약 선진국들에서도 성분명 처방이나 대체 조제가 안전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 현실에서 더욱 우려되는 것은 위에서 보고된 오리지널 약에서 제네릭 약으로의 대체 뿐만 아니라, 어떤 회사에서 만든 제네릭 약을 먹던 환자가 또 다른 회사에서 만든 제네릭 약으로 대체 조제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이다. 인기가 있는 하나의 오리지널 약에, 많게는 100여개나 되는 크고 작은 제약사들이 제네릭 약을 제조ㆍ판매하는 우리 현실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현행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의 허가 기준이란 것은 단순히 말하자면 오리지널 약의 역가가 100이라 할 때 제네릭 약이 80~125의 역가를 나타내면 같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80의 역가를 가진 제네릭 약을 먹던 환자에게 약국에서 125의 역가를 가진 제네릭 약으로 바꿔 조제한다면 그 환자는 약 1.5배의 과용량에 노출된다.
그 반대 경우라면 기존에 복용하던 약의 3분의 2 정도밖에 안 되는 용량을 먹는 셈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제네릭 약의 안전성에 관한 의사와 환자의 문제 제기에 대해 공식적으로 생물학적 동등성이 인정된 제네릭 약은 ‘오리지널 약à제네릭 약’식으로 대체 조제해도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A사에서 만든 제네릭 약↔B사에서 만든 제네릭 약’으로 대체하는 경우의 안전성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동안 정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네릭 약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운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조작사건의 여파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시간에도 시중 약국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제네릭 약 중에서 그 품질을 완전히 신뢰하고 처방할 수 있는 약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보다 오랜 세월 제네릭 약의 품질 관리를 꾸준히 해온 나라에서도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 현실에서 오리지널 약을 선호하는 의사나 환자를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임동석ㆍ가톨릭의대 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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