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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촛불집회 속엔…/ <上> 디지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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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촛불집회 속엔…/ <上> 디지털이 있다

입력
2008.05.2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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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문화가 진화하고 있다. 돌멩이 대신 촛불을 들고, 동료의 어깨를 거는 대신 아이를 무등 태운다. 집회 현장은 마친 축제에 온듯한 분위기다. 디지털의 힘을 빌린 집회의 위력은 대규모 군중 시위의 그것을 넘어서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를 계기로 나타난 새로운 집회 양상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인터넷과 이동통신이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 청계광장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나 경찰의 시위자 체포 장면이 인터넷과 이동통신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등 과거와 전혀 다른 집회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집회에는 직접 참가하지 못하지만 책상 앞에서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 시위에 간접 참여하는 '디지털 집회'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집회의 성지 '인터넷 토론 광장'

과거 민주화운동의 성지(聖地)가 명동성당이었다면,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의 성지는 네티즌들의 토론광장 '다음 아고라'다. 연일 계속되는 촛불문화제를 촉발시킨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이 시작된 곳이 이곳이었고, "대운하 찬성 논리를 강요받고 있다"는 김이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양심선언이 나온 곳도 여기다.

이곳에는 청계광장 집회에 참석한 소감이나 정부의 강경 대응에 항의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천 건씩 올라오고 있다. 이렇게 토론 사이트나 포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블로그나 카페, 뉴스 댓글 등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경찰의 시위자 연행에 대한 항의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밤사이 경찰의 시위자 연행 상황, 경찰서별 조사 인원에 대한 정보가 퍼지면, 해당 경찰서 홈페이지는 바로 경찰의 강경 대응을 비난하는 글로 넘쳐 나고 사무실에는 항의 전화가 쏟아진다.

집회현장↔책상앞 '쌍방향 정보 전달'

촛불문화제와 거리시위 상황은 웹 카메라와 와이브로를 통해 인터넷으로도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다. 인터넷방송 사이트 '아프리카'에는 날마다 수십 개의 집회 생중계방이 만들어진다. 방마다 200명이 들어갈 수 있는데, 집회시간대에는 항상 모든 방이 가득 찬다.

지난주 토요일부터 매일 시위 생중계를 지켜봤다는 이화여대 4학년 신모(25)씨는 "경찰의 강경 진압 장면을 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집회 참석을 망설였지만 이번 주중에는 꼭 나가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 집회 현장에서도 "인터넷 생중계를 보다가 화가 나서 뛰쳐나왔다"는 시민들이 자주 눈에 띈다.

책상 앞에서 집회 생중계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저 수동적으로 시청하는 '방관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들은 영상이나 문자메시지로 들어오는 청계광장 주변 집회 상황과 경찰 대응 현황 등의 정보를 문자메시지와 게시판을 통해 공유하고, 그것을 집회 참가자들에게 바로 '피드백'해 주고 있다.

근대적 정부와 탈근대적 시민

이러다 보니 집회에 대응하는 경찰도 힘들어졌다. 집회 상황을 예측하고 변수를 통제해 불확실한 요소를 사전 차단하는 것이 경찰 정보활동의 핵심인데, 이것이 '디지털 집회'에서는 어려워진 것이다. 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한 일선 경찰관은 "새로운 집회 양상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며 "워낙 변수가 많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새로운 집회 양상에 대해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대중과 정부의 '수준 차이'로 설명했다. 진 교수는 "시민의 의식은 포스트모던 단계에 와 있는데, 정부의 사고방식은 아직 전근대적"이라며 "언론을 장악하거나 댓글을 삭제해 저항을 막을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분석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고도 정보화 사회의 동시성'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정부가 청계광장의 촛불을 끈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진화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허위 정보가 급속도로 유포돼 악용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인터넷ㆍ이동통신망을 타고 워낙 빠르게 퍼져, 검증이 이뤄지기도 전에 '사실'이 돼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열아홉살 재수생이 여자친구에게 보낸 "5월 17일 휴교"라는 거짓 문자메시지는 단 30분만에 전국으로 퍼졌다. 경찰이 촛불집회 해산 과정에 물대포를 사용하고 백골단을 투입한 것을 고발한다던 동영상은 한 재미동포가 허위로 올린, 지난해 FTA 반대 집회 동영상으로 밝혀졌다.

이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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