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35ㆍ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씨는 이달 초부터 간단한 찬거리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구입한다. 그 동안 자동차로 인근 문래동과 당산동에 있는 대형할인점을 다녔지만, 자주 들르는 주유소 휘발유 값이 ℓ당 2,000원을 넘어가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비싼 기름값 물면서 할인점 갈 처지가 아니구나 싶었다. 동네 슈퍼는 쇼핑 재미는 덜해도 무료 배달서비스를 해줘 무거운 물건을 사도 부담스럽지 않다.”
고유가 시대를 사는 소비자들의 아이디어가 절묘하다. 차 없이 다닐 수 있는 동네 슈퍼나 온라인 슈퍼를 이용하며 무료 배달서비스를 받는다. 폼 나는 큰 차 대신, 연비 좋은 경차로 갈아탄다. 항공권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휴가철 항공권 선구매도 러시를 이루고 있다.
무료 배달·온라인 슈퍼 매출 급증
GS리테일이 이달 1~25일 GS슈퍼마켓의 매출을 살펴본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3.2%, 내점 고객 수는 7.8% 늘어났다. 특히 무료 배달 건수는 22.9%나 증가했다.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근거리 매장이라는 장점 외에 차가 없어도 생수나 화장지 등 부피가 큰 상품은 무료 배달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GS슈퍼마켓은 2만~3만원 이상 구매고객에게무료 배달서비스를 제공한다.
온라인 슈퍼 이용객도 크게 늘어났다. 롯데슈퍼 온라인 주문의 경우 5월 매출액은 지난달 대비 40%, 주문건수는 35%나 신장했다. 온라인 쇼핑 때 단돈 100원짜리를 사도 금액과 상관없이 무료 배달을 해주고 오후 7시까지 주문상품은 당일 배송을 원칙으로 한다. 롯데슈퍼 여의점 조충원 점장은 “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3월부터 매월 30% 이상 인터넷 주문 신장세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인터넷 사은행사, 슈퍼 마일리지 제도 등 온라인 주문의 장점을 홍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매금액 2만원 이상이면 무료 배송해주는 GS인터넷슈퍼의 주문건수도 전년보다 25% 늘었다. 유가가 급등한 5월은 전년보다 43%나 급증했다. 집안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각 매장의 주부사원들이 직접 장을 본 후 3시간 내 배달해주기 때문에 야채, 생선과 같은 신선식품도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다.
하미선 GS리테일 인터넷슈퍼팀장은 “컴퓨터와 친근한 20~30대가 주고객이지만, 최근 고유가의 영향으로 40~50대 고객 비율이 작년 대비 7배 가까이 늘었다”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진행하는 쿠폰행사, 요일별 특가행사를 온라인에서도 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차 마티즈·모닝 인기 절정
회사원 A씨는 최근 기름값이 치솟자 중형 세단을 팔고 연비가 좋은 경차 ‘모닝’ 을 사기위해 전시장에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모닝이 한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시장 직원은 “기름값 폭등으로 경차 인기가 높아져 전시장에 내놓을 물량조차 없다”며 “최소 6개월은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유가로 경차 수요가 몰리면서 품귀 현상마저 일고 있다. 기아차 모닝의 경우 지금 계약하면 11월 말에나 차를 인도 받을 수 있다. 대기 물량만 27일 현재 3만8,000대에 달한다. GM대우도 ‘마티즈’ 대기 물량이 이날 현재 3,562대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마티즈와 모닝은 ‘묻지마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차 상태에 관계없이 매물로 나오자마자 팔려나가고 있다. 서울 장안평 뿐만 아니라 수도권, 지방에서 까지 경차 물량이 동이 났다. 모닝 중고차의 경우 웃돈까지 붙어 팔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송파에서 영업하는 중고차 업체 ‘중고차 드림팀’의 홍순문 대표는 “전에는 경차가 찬밥 취급을 당했으나, 요즘은 없어서 못 팔 정도”라며 “중고차 구매 행태도 실속형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항공권 가격 오르기 전에…"
주부 유미선(36ㆍ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여름방학 기간 초등생 딸과 함께 미국 여행을 계획 중인데, 지난 달 이미 항공권 구매를 끝냈다. “유가가 계속 오르면 항공권 가격도 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달 들어 미주 노선 항공권이 매진 상태라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항공사들이 유류비 부담 증가로 항공권 가격을 6월 1일부터 인상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본격 휴가철인 6~8월 3개월 동안 미주 및 유럽 지역 국제선 항공권은 이미 다 팔려 나간 상태다. 휴가철을 앞두고 직장인들이 미리 항공권을 구매한 탓이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아직 미주나 유럽 지역 항공권 가격을 인상한다는 통보를 받지 못했으나, 고객들이 미리부터 항공권 가격 인상을 우려해 구매를 하는 상황”이라며 “8월까지 미주 노선은 항공권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유류할증료 16단계중 4, 5, 6월이 최고인 16단계로 이미 최고 가격”이라면서도 “항공사들이 16단계 체제를 20단계 정도로 높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오를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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