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경기는 안 좋은데 경유 값까지 올라 하루 버는 돈이 고작 3만원이다. 어떻게 생활을 할 수 있겠나." (서울 강동구 고덕동 노점상 이모씨)
"경유 값이 ℓ당 2,000원까지 치솟아 고속도로 통행료라도 아끼기 위해 야간 운전으로 연명하고 있다. 졸음운전으로 사고 위험이 높지만,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 개인화물차주 장모씨)
사상 초유의 경유대란에 산업계와 서민경제가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경유가격 폭등으로 인한 면세유의 급등으로 농어민들이 농기계와 어선을 세워둔 채 생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까지 ℓ당 700~800원하던 면세유(경유)가격이 1,200원까지 치솟으면서 농기계를 운영하거나, 출어를 하면 할수록 빚더미에 올라설 처지에 내몰려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시에서 농사를 짓는 권모(63)씨는 "인건비와 비료값에 이어 면세유가 두배나 올랐는데 어떻게 수지를 맞출 수가 있겠나"며 "차라리 땅을 놀리는게 낫다"고 말했다.
서민경제 파탄 일보직전
이미 화물연대는 23일 고유가 대책과 운송료 현실화에 대해 정부와 화주, 대형 물류회사들이 대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화물차의 서울∼부산 왕복 운임이 80만원 선인데, 경유 값 상승으로 연료비만 60만원 대에 육박해 적자운행이 불가피하다"며 "운임비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차를 세울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매매화물 운송연대 지부들도 운송비 20~30% 인상을 요구하며 일감을 줄이고 하루 운송횟수를 5회에서 3회로 줄이는 등 준법 투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경우 사실상 거리에 내쫓길 위기에 처해 생존의 위협마저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소형 트럭으로 야채 판매를 하고 있는 김모(47)씨는 "지금까지 17년 간 야채를 팔았는데, 이렇게 살기 힘든 적은 없었다"며"경유 값이 오르면서 이윤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페인트 도매상을 하는 하모(61) 사장도 "원주까지 가서 9만원어치 페인트를 팔면 6만원이 남았는데, 지금은 경유 값 때문에 3만원밖에 안 남는다"며"100㎞가 넘는 장거리 배달은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득"이라고 푸념했다.
커져가는 산업계 신음소리
경유대란은 물류업계와 운송업계, 자동차업계에 이르기까지 산업계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한통운, 한진 등 물류ㆍ택배업체들은 최근 경유 값 급등으로 원가에서 유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10% 내외까지 상승해 경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업체는 공차율을 최소화하고, 운전자들에게 경제속도 준수를 촉구하는 등 원가 절감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한통운 관계자는 "해운 및 항공업계와 달리 택배회사의 경우 기름값이 오른다고 해서 요금을 올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운송업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경유 값 급등으로 시외버스 1대당 유류 비용이 지난해 5월 485만5,000원에서 올해 5월 664만2,000원으로 늘어나 경영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버스 1대당 한달 평균 351만원 가량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유류세 전액 환급과 요금인상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동차업계도 SUV 등 경유 차량 판매 급감으로 일부 업체가 감산에 들어가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완성차 업계의 SUV 판매 실적은 총 1만4,258대로 지난해 4월에 비해 18.2%나 줄어들었다. 쌍용차는 일부 경유차 생산라인의 인원을 줄이는 등 사실상 감산체제에 들어갔다.
수출업계까지 불똥
레미콘업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화물차와 달리 상대적으로 단거리를 운행하기 때문에 기름값 비중은 크지 않지만 화물차, 버스, 택시와 달리 유가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데다 건설사에 레미콘값 인상을 요구할 수도 없어 속앓이만 하고 있다.
경유 값 급등에 따른 산업계의 피해가 커지면서 수출업계에까지 불똥이 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백재선 하주사무국장은 "운송비와 물류비용이 증가하면 수출 가격 상승 등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원가 경쟁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현희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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