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무언가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국제유가 전망은 무참히 짓밟혔고, 서민들의 생계 수단인 경유는 휘발유 가격 추월을 앞두고 있다. 화물연대의 파업 선언으로 '물류 대란'도 현실화할 조짐이다. 더 이상 손을 놓고 있다가는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 '제2의 광우병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짙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부랴부랴 고유가 및 에너지 대책을 내놓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28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국제유가 급등세 지속에 따른 추가 에너지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6월30일 일몰제 적용으로 폐지 예정인 화물차 유가보조금(리터당 287원) 지급 제도를 2년 추가 연장하는 방안, 면세유 공급 대상 확대 방안 등을 놓고 부처간 조율 작업을 진행 중이다. 화물연대가 요구하고 있는 운송료 현실화와 관련해서는, 주무 부처인 국토해양부가 운송회사 및 화주단체 등과 차례로 간담회를 갖고 절충점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생계가 막막해진 민심을 잠재우긴 쉽지 않아 보인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유가 보조금 연장은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라며 "경유세 인하, 운송료 현실화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화물업계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더구나 운송료 현실화 만으로는 화물연대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힘 없는 영세 자영업자나 농어민들의 고통은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유일한 해법은 경유세 인하 뿐이다.
정부도 이 같은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문제는 경유세 인하 요구를 섣불리 받아줄 수 없다는 데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경유세를 인하하게 되면 원칙과 형평성이 무너지게 된다"며 "국제적으로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월등히 앞서는 상황에서 국내적으로 경유 가격만 인위적으로 낮출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민심이 정부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먼저 원칙을 저버렸다는 데 있다. 참여정부 당시 에너지세제개편을 단행하면서 경유 가격을 휘발유의 85%로 끌어올리는 '100대 85' 원칙을 제시한 것은 정부였다. 경유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강정빈(38)씨는 "경유가 휘발유 가격의 85%를 유지한다는 정부 방침만 믿고 경유차를 구입했는데 이제 와서 원칙을 운운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에너지 대책도 우왕좌왕하긴 마찬가지다. 4월말 1차 에너지대책과 마찬가지로 부처간 이견이 상당하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26일 관련 부처 실무자 회의에서 연비 1등급 차량에 대해 개별소비세와 취ㆍ등록세 등을 면제해주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정작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들은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연비에 따라 세금을 차등하는 것은 1차 대책 당시에도 통과되지 못했던 사안"이라며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갈수록 정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을 기대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고위층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