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면희 옮김 / 현암사
현암사의 창업자인 조상원이 2000년 5월 27일 87세로 사망했다. 해방 직후 건국공론사를 창업한 그는 박목월이 지어주었다는 ‘이끼가 가득 낀 바위’라는 뜻의 자신의 호를 써서 1951년 현암사로 출판등록을 한다. ‘법전(法典)’은 성문법을 모아 편찬한 법령집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지만, 조상원이 1959년 3월 현암사에서 최초로 낸 책의 제호,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신생 대한민국의 법을 한 자리에 모은 법령집의 출판을 기획한 그는 그때까지 통칭되던 ‘육법전서’라는 왜색 명칭을 버리고 처음으로 <법전> 이란 책이름을 썼고, 실용신안특허까지 받았다. 법전>
조상원은 스스로를 ‘책바치’라고 불렀다. 가죽신을 만드는 직인을 가리키는 우리말 ‘갖바치’에 비유해, 장인정신과 예술정신이 함께 담긴 책을 만들겠다는 출판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이었다. 그는 ‘바치의 철학’이란 에세이에서 “출판인은 대학총장 못지않은 사명을 지녔다. 총장이 훌륭한 교수를 찾아서 학생을 가르치게 하는 것과, 출판인이 좋은 저자를 찾아내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고 썼다. 그의 유명한 ‘출판인 대학총장 버금론’이다. 현재 국내 출판계의 최고령 원로인 정진숙(96) 을유문화사 회장보다 한 살 아래로, 해방되던 해 나란히 출판사를 세운 한국 출판 1세대인 그의 삶은 우리 출판의 역사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현암사는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 한국일보가 제정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한국의 명저> 등으로 1960년대 중후반 한국학 바람을 선도했다. <논어> 등 사서삼경의 신역본과 <장자> <도덕경> <당시> <정관정요> 도 현암사 판이면 믿을 만했고,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 과 <장길산> , 이철용의 <꼬방동네 사람들> 로 1980년대초 장안의 지가를 올린 것도 현암사였다. 1997년부터 출간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백가지>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의 자연과 문화, 우리것을 꽃 놀이 음식 옛글 등 주제별로 각각 100가지씩 담는다는 기획으로 출간된 이 시리즈는 어느새 50종을 넘었다. 우리가> 꼬방동네> 장길산> 어둠의> 정관정요> 당시> 도덕경> 장자> 논어> 한국의> 흙>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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