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안에 경찰관이 항상 자리 잡고 앉아 있던 것이 최근까지의 일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극장, 그것이 영화관이든, 연극하는 곳이든, 쇼를 하는 곳이든, 공연장에는 반드시 경찰관 석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극장 1층 맨 뒤 중앙에는 의자 두개가 꼭 있는데 이것이 경찰관들의 자리다. 이름하여 ‘임검석’이다. 임검이란,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경찰이 현장에서 조사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사건이 생기지 않게 미리 현장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극장에 상주했던 것이다. 영어로는 ‘Official Inspection’이라고나 할까. 사상적으로 불순한 내용이 공연 되거나, 청소년들에게 해로운 내용,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 등등을 감시하기 위해 경찰이 입회를 하는데, 사실 이것은 일본인들이 만들어 놨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우리의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임검 제도를 충분히 이용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래 ‘황성 옛터’ 사건이다. 1928년에서 30년 사이에 만들어진 이 노래는 서울의 극장 단성사에서 소개가 된다. 극작가이며 배우이기도 한 왕평이 가사를 짓고, 작곡가 전수린이 곡을 만든 이 노래를 가수 이애리수가 단성사 무대에서 부를 때 극장 안에 있는 모든 관객들이 엉엉 울면서 따라 불렀다. 이런 장면을 일본 경찰들이 내버려둘 리가 있겠는가. 왕평과 전수린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경찰서로 연행되고,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붙들려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노래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황성 옛터’는 대박이 터지게 되었다. 또한 그 후로도 수많은 가수들이 앞을 다투어 이 노래를 불렀다. 남인수 김희갑 이미자 윤복희 나훈아 한영애 조용필 김정호 등등이다.
그런 임검제도가 해방이 한참 지난 뒤인 1970년대까지 있었다. 그리고 60년대에 아주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야, 노래 그만 해!”라는 사건이다. 가수가 무대 위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고 있는데 임검하고 있던 경찰관이 무대로 올라 와서 노래를 중단 시킨 일이다. 경찰이 가수 노래를 중단시키다니? 놀랄 일이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1966년 1월 어느 날. 서울에 있는 노벨극장에서 쇼가 공연 되고 있었다. 노벨극장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서울 동대문 밖 창신동과 신설동 사이에 있던 별로 크지 않은 극장인데 우리는 이곳을 3번관이라고 불렀다. 극장은 개봉관, 2번관, 3번관, 그리고 4번관까지 구별을 했다. 서울 시내 몇 군데에서 영화 개봉을 하고, 그 다음으로 2번관에서 재개봉을 하고, 다음엔 3번, 4번 극장으로 옮겨 가는 식이다. 요새는 전국에서 700~800개 극장 동시 개봉이니까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 노벨극장에서 우리의 가수 이금희가 무대 출연을 했다. 이금희가 어떤 가수인가? 무대에 올라섰다 하면 정신없이 춤추고 노래 부르는 가수가 아닌가. 조용히 서서 노래하라고 하면 이금희는 가수 은퇴한다고 했을 정도로 화끈한 쇼 매너를 가지고 있었다. 한번 폭발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박력 있는 가수다. 그래서 그녀의 별명이 ‘다이너마이트’였다. 이날도 예외없이 무대 위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이금희가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객석이 난리가 난 것이다. 관객들이 일어나서 몸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무슨 문제야?” 하며 의아해 할 것이다. 오히려 형광봉을 나눠 주고 모두 함께 일어나서 박수치고 춤을 추라고 부추길 터이다. 객석이 아무 반응이 없으면 싱거워서 노래를 못 한다고 했을 것이다. 또는 인기가 없는 가수 소리를 들을까 봐 일부러 팬들을 동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60년대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무대에서 아무리 광란의 몸부림을 쳐도 객석에서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앉아 있을 때였다. 이때 갑자기 관객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고 춤을 추니까, 임검 경찰관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자,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 당시 임검은 한 극장에 2명 정도가 나가는 것이 보통인데 이때 하필이면 5명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생각할 때, 이런 흥분된 상태를 해결하는 길은 가수의 노래를 빨리 끝내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대충 끝내 주십시오” 라고 말하기 위해 경찰관 한 사람이 무대에 올라갔는데 자기 자신도 흥분 했는지, 한다는 소리가, “야! 노래 그만 햇!”이라고 말했다. 자, 여기서 사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욱!’ 하는 성격으로 말한다면 이금희야말로 연예계에서 ‘한 욱!’하는 편이라 “네, 그럽죠”하고 참고 넘어 갈 리가 없다. “일제시대도 아니고, 도대체 노래 한창 부르고 있는 가수한테 그만두라고 명령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경찰관은 관객들이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실嗤?했다고 사과를 했고, ‘욱!’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마음씨 좋은 이금희가 사과를 받아드리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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