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어느 때보다 설렌다. 실향민들이 한번 품에 안기도 힘든 북녘 고향 땅을 1997년 이후 20차례나 밟았으니 감흥이 줄어들 법도 하건만, 그는 밤잠을 통 이루지 못했다. 희수(喜壽)에 접어든 안유수(77ㆍ사진) 에이스침대 회장에게 고향 사리원은 그런 곳이다. 남다른 감회가 밀려오는 이유는 또 있다.
안 회장은 27일부터 4일간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초청으로 경의선 ‘육로’로 고향을 찾는다. 58년 전 터벅터벅 혈혈단신 내려온 그 길(피란 길)을 차창 밖으로 해후하게 된 것이다.
지금껏 그의 고향 방문은 중국 등 제3국을 멀찌감치 돌아와야 했다. 서울에서 고향까지는 차로 고작 2시간, 이 짧은 거리를 두고 애태웠으니 가슴이 벅찰 수밖에 없다. 그는 “젊은 시절 내려온 길을 백발이 된 지금 육로로 거슬러 올라 고향에 갑니다”라고 감회를 밝혔다.
새 정부 들어 기업인의 첫 육로 방북이라는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안 회장은 아태평화위원회 및 사리원시 인민위원회 관계자를 만나 ‘황해북도 예술극장’ 건설 상황을 둘러보고, 여러 가지 대북협력 사업도 논의한다. 최근 남북관계가 순탄치는 않지만, 안 회장의 ‘짝사랑’은 변함이 없다.
심지어 올해 7월 완공 예정이던 에이스침대의 사리원공장 건립이 북한의 애매한 태도로 반년 넘게 ‘삐걱’거리고 있는데도, 그는 북한과의 협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올해 4월에도 사리원에 짓고 있는 황해북도 예술극장에 의자 1,000개를 공급했고, 6월엔 직접 기술자를 보내 설치 작업도 도울 예정이다.
북한 역시 97년 이후 10년 넘게 대북사업을 진행해온 안 회장의 신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양국 관계는 세월 따라 부침을 겪었지만, 한 기업인과 북한의 인연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에이스침대 관계자는 “북측이 최근의 당국간 문제를 떠나 경의선 육로로 안 회장을 초청했다”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육로 방북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한국전쟁이 터지자 고향 사리원에 부모를 남겨두고 월남했다. 부산에서 부두노동자로 전전하다 63년 상경, 서울 금호동 달동네에 에이스침대공업사(에이스침대의 전신)를 설립, 국내 최대 침대업체로 성장시켰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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