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는 찰흙으로 만든 소조상의 느낌을 준다. 조물락거려 빚은 얼굴엔 감독의 지문이 찍혀 있고, 그럴싸한 몸뚱이에도 그 인물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은 종종 그 인물의 진실과 거리가 있다. 그건 인간 존재의 근원적 한계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밥 딜런이라는 인간을 영화로 표현하면서, 토드 헤인즈 감독은 전혀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흙덩이를 덧붙이는 대신 자연석 덩어리를 깎는다. 밥 딜런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을 일곱 개의 정으로 준비한 뒤, 그걸 밥 딜런이라는 자연석에 대고 힘있게 내리친다. 망치질을 할 때마다 돌은 이런 소리를 튕겨낸다.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누구도 아니다!”
날카로운 돌의 비명을 통해, 관객은 밥 딜런을 가두었던 나름의 인식틀이 무너지는 것을 체험한다. 여차하면 밥 딜런이라는 존재가 머릿속에서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영화는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밥 딜런을 구성하지 않고, 밥 딜런에 대한 관념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그를 표현한다. 이 역설적인 영화의 제목은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 다. 아임>
영화 속에는 서로 무척이나 다른 7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11살 흑인 소년 우디(마커스 칼 프랭클린)부터 노년의 빌리(리처드 기어)까지 다양하다. 외모도 처한 상황도 삶의 태도도 일관성이 거의 없다.
밥 딜런의 인격을 나눈 절편으로 보기에, 캐릭터들이 발산하는 빛과 소리는 너무 판이하다. 그래서 되레 사실적이다. 그의 인생의 명제-“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되는 것뿐, 그게 누구든 간에(All I can do is be me, whoever that is)”-대로니까.
일곱 캐릭터를 연기하는 여섯 배우(크리스찬 베일은 1인 2역을 한다)는 모두 특정 시점의 밥 딜런을 재현한다. 영화 초반 기차를 훔쳐 타는 꼬마 음유시인 우디는 밥 딜런의 천재성을 보여준다. 포크 음악을 통해 1960년대 반전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잭(크리스찬 베일)은 세인의 기억에 담긴, 밥 딜런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모습.
반면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뛰르 랭보에 투사된 캐릭터 아서(벤 위소), 신앙에 귀의해 가스펠을 부르는 존(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은 한국팬에겐 다소 낯설다. 영화 배우 로비(히스 레저), 은둔의 무법자 빌리도 새롭게 느껴진다.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포크에서 록으로 돌아선 뒤 ‘변절자’라는 세상의 시선과 맞서는 록커 쥬드다. 놀라운 것은 쥬드 역을 맡은 배우가 우아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을 그려 온 케이트 블란쳇이라는 사실.
모두의 우려를 보란 듯 뒤집으며, 그녀는 유리조각처럼 섬세하고 날카로운 쥬드를 훌륭히 소화해 냈다. 게다가, 실제 밥 딜런의 외모와 가장 비슷하기까지 하다! 블란쳇은 이 영화로 200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헤인즈 감독은 이 영화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많은 부분에서 성공을 거뒀다. 그는 진짜 밥 딜런을 ‘만들려는’ 노력 대신, 픽션을 통해 밥 딜런의 삶을 되비쳐 낸다.
그것은 긍정으로도 읽히고 부정으로도 읽히며, “나는 내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했다”는 밥 딜런의 말을 능청맞게 비트는 것으로도 읽힌다. 난해하지만 매력적이고, 또 어딘가 불편한 구석을 감추고 있다. 이 영화도, 밥 딜런의 인생도. 29일 개봉. 15세 관람가.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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