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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케이블 '석세스TV'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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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케이블 '석세스TV' 사람들

입력
2008.05.2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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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방송 업계에는 예전부터 내려온 무시무시한 전설(?) 하나가 있다. ‘자체 제작 프로그램은 망한다. 돈만 더 들고 시청률은 더 낮아진다. 그냥 안전한 재방(송)해라.’ 공들여 프로그램을 만들어봐야 남는 게 없으니 철 지난 영화나 지상파의 인기(혹은 종영) 프로그램을 틀라는 얘기다.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은 케이블역사에서 매일밤 ‘돌아오는(재방) 해병’의 오명을 남겼고, 모 지상파의 <무한도전> 은 케이블에선 ‘무한재방’으로 불린다. 하지만 최근 케이블방송들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시청하는 마니아도 상당수 있다.

뉴스ㆍ시사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지상파 방송처럼 정형화한 뉴스는 아니지만 남모를 매력도 숨어있다. “단출하지만 은근 중독성이 있다”(시청자 게시판)는 평을 받는 성공채널 <석세스tv> 의 생방송 <한국일보 타임> 의 출연ㆍ제작진을 만났다.

S#1-신문을 다려라

생방송 시작 3시간 전인 새벽 6시. 탁자 곳곳에는 한국일보, 스포츠한국 등 그 날 일간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작가, 앵커 모두 기사가 담긴 지면을 찾고 이를 분리하느라 분주하다. 시청자들이 보기 좋게 중요 제목에는 빨간 밑줄을 긋는다. 급기야 다리미까지 등장해 구겨진 신문지는 깔끔하게 편다. 준비된 기사는 화면에 잘 잡히도록 보드 위에 순서대로 붙여진다.

신문 스크랩이 완료되면 다음은 메이크업 시간. 분장을 하면서도 방송 내용을 외우느라 앵커들의 마음은 바쁘기 그지없다. 방송시작 20분전. 모두 스튜디오로 내려와 최종 점검에 들어간다. 작가는 대본을 챙기고, 앵커는 발성 연습, PD는 마이크와 최종 동선을 확인한다. 그리고 ‘큐’사인과 동시에 전쟁은 시작된다.

정 작가: 신문을 오리고 있노라면 가끔 화가 나. 여건이 너무 열악해. 그래도 이를 악물어. 형편이 어려울수록 서로 도와 최고의 방송을 만들어야지.

오 PD: 제작비가 지상파의 3분의 1수준이니 어쩔 수 없어. 겉은 촌스러워 보이겠지. 하지만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에서 유익한 정보를 얻는다는 시청자가 늘고 있다는 게 뿌듯하지 않아? 잘해 보자고.

앵커들: 맞아, 세트는 중요하지 않아요. 정보의 질, 프로그램의 내용이 중요하지. 우리가 아침마다 전하는 기사는 최고라고 감히 자부해요. 시청자가 원하는 유익하고 생생한 정보를 골라 깊이 있게 전달한다는 면에서요. 누가 뭐래도 우린 프로에요.

‘가상 스튜디오’(Virtual Studio)가 등장하는 요즘, 칼로 오리고 다리미로 다린 신문을 뉴스ㆍ시사프로그램 화면에 올리는 건 촌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소개하는 정보는 주요 일간지에 실린 경제심층 및 기획 기사를 엄선한 것들. 비록 전달 방식은 고전적이지만 담긴 콘텐츠 만큼은 인터넷 매체의 휘발성 정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 있는 내용들이다. 생방송 시간도 매일 45분으로 결코 짧지 않다. 매일 아침 새벽을 여는 이들에게는 이런 자부심이 있기에 고된 일도 어렵지 않다.

S#2-시청률 두자리 수의 비밀

방송 석 달을 맞은 뉴스ㆍ시사프로그램인 <한국일보 타임> 팀에 최근 낭보가 날아들었다. 시청률이 두자리 수를 넘었다는 것. 지상파처럼 10~30%대를 논한다면 오산이다. 평균 시청률은 0.09%로 소수점 이하 두자리 수다. 방송 초창기엔 아예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현재 최고치는 0.1%. 이만하면 다른 케이블방송의 동종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케이블에선 시청률 2%만 해도 대박이라고 한다. 출연진의 케이블 예찬론이 이어진다.

정 작가: 꼭두새벽에 일어나 해야 하는 작업이라 쉽진 않죠. 여건이 허락된다면 전체 구성을 더 잘하고 싶지만 사정을 잘 아니까요. 하지만 제가 쓴 대본은 밉든 곱든 제 자식이에요. 케이블은 제 역량을 보다 잘 발휘할 수 있죠. 특히 시기에 적절한 마무리(클로징) 대사로 그날 방송의 방점을 찍으면 뿌듯해요.

김유나: 케이블은 다양성이 아닌 전문성으로 승부해야 해요. 다루는 정보도 보다 직접적이죠. 사람마다 각기 수요가 다른데 케이블은 시청자에게 더 친밀하고 가깝게 다가서죠. 더구나 케이블은 지상파와 달리 앵커가 제작단계 전과정에 참여해요. 그저 대본만 읽는 게 아니라 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거죠.

김현진: 요리 재료보다 중요한 건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손 맛이죠. 신문기사를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어조를 달리하고, 강조 포인트도 살려 변화를 주죠. 지상파는 안정을 지향하는 비슷한 맛이라면 케이블은 시청자의 구미에 맞춰 앵커가 요리의 맛을 낼 수 있는 폭이 훨씬 넓다고 할 수 있어요.

손석우: 겉만 열악해 보이지 연출은 절대 뒤지지 않아요. 지상파는 뉴스 전달 시간이 길어야 5분이지만 우리는 45분 동안 깊이 있게 정보를 전달하죠. 지루할 수도 있지만 세세한 설명과 분석을 원하는 수요도 분명 있거든요. 케이블은 그 틈새를 노린 것이죠.

<석세스tv> 1기 앵커인 이들은 매년 1,000여명의 지망생이 짐 싸 들고 각 지역 방송국의 채용일정을 찾는 현상을 ‘철새’에 비유했다. 자신들도 한때 이 무리에 속해 있었다고 했다. “앵커라는 직업을 화려한 무대가 아닌 전문직과 평생직장으로 여긴다면 한 분야에 특화해 경력과 위상을 쌓을 수 있는 케이블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김없이 새벽이면 신문을 다린다. 빳빳하게.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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