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6시, 서울 청계광장 옆 도로에 줄지어선 수십 여대의 경찰버스 안. 촛불집회 참가자의 도로 진입을 막으려고 배치된 전경들의 저녁 식사가 막 시작됐다. “밤 9시는 돼야 밀고 나올 테니, 지금은 많이 먹어둬라”는 전경대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찰버스 내부는 난장판이 됐다.
시민 1,000여명이 순식간에 경찰 버스로 구축된 저지선을 뚫고 광화문 쪽으로 몰려나간 것이다. 식판을 팽개치고 출동한 경찰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가까스로 시위대를 저지했지만, 이날 밤 늦게까지 시위대의 게릴라성 움직임에 계속 끌려 다니기만 했다.
경찰이 24, 25일 서울 도심시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을 놓고 경찰 내부와 외부에서 극단적으로 엇갈린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외부에서는 과거 시위와 완전히 다른 촛불집회의 ‘아메바식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반면, 경찰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준비한 배후세력의 소행이라는 입장이다.
촛불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26일 “평화 집회가 시위로 확산된 것은 우발적인 것일 뿐 주도자나 배후세력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우리는 장소만 제공할 뿐 모든 토론과 행사 진행은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이뤄진다”고 말했다.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20~30대 여성이고, 군중을 이끄는 지도부가 없는 등 지리멸렬한 상태인데도 경찰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경찰이 일사불란한 시위 진압에만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도 “경찰은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시위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대응하는데, 촛불집회는 늘 즉흥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사전 예측 및 대응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회 참가자의 상당수가 연약한 여성이라는 점도 경찰이 공격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경찰은 아메바처럼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미리 재단한 주동자가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경찰은 특히 배후세력이 없었다면 ‘24, 25일 이틀 연속 경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어청수 경찰청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자전거를 탄 선발대가 미리 나가서 시위대의 움직임을 선도하고, 시위대가 곳곳에서 출몰해 경찰력을 분산시켰다”며 “결코 우발적인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일부 인터넷 카페 회원이나,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움직임에 동참한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한총련)과 민주노총 등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만 이들 단체들은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일부 보수단체도 배후 세력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촛불시위는 반정부세력이 지난 3월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며, 27일 오전 배후 세력의 정체를 밝힐 문건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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