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마운드로 달려나가던 ‘야생마’가 있었다. 그 강렬한 카리스마와 열정만으로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는 낯선 삶을 찾는 방랑자였고,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보헤미안이었다.
봄볕이 따스하게 내려 쬐던 26일,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의 한 골목으로 들어서니 익숙한 이름의 간판이 눈에 띈다. ‘closer 47’. 시대를 풍미한 야구선수에서 로커로, 다시 경영자로 변신한 이상훈(37)을 만나 새 사업과 음악, 그리고 야구 얘기를 들어봤다.
클로징 없는 클로저 47
주택가에 있는 건물의 첫 인상은 지친 발걸음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안락한 카페와도 같은 느낌이다. 그가 뛰어든 ‘종목’은 토탈뷰티샵. 말 그대로 헤어와 메이크업, 스킨케어, 두피케어, 네일케어 등 ‘미(美)’에 관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신개념 뷰티 커뮤니티다.
긴 머리를 빼고는 이상훈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뷰티샵은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시절 현지에서 친분을 쌓았던 헤어 디자이너의 권유로 도전하게 됐다.
“마지막 투구를 던지는 마무리투수의 열정으로 새로운 미를 창조할 뷰티샵의 비전을 담았습니다.” 그의 야구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클로저 47(www.closer47.co.krㆍ대표전화 02-517-1047)’로 석 달 전 오픈한 샵은 그가 직접 채용한 디자이너와 직원 20명으로 꾸려가는 제법 큰 회사다.
다방면에서 내공을 쌓은 실력파 디자이너들의 인맥을 통해 연예기획사와 웨딩 회사와 제휴, 연예인들이나 예비 부부가 주로 그의 고객들. 요즘에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 오는 일반 손님들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손님들 머리는 저도 가끔 직접 감겨드리고 있습니다. 지나가다 차 마시러 들르셔도 좋고, 이상훈을 보러 오셔도 좋습니다. 사랑방 같은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는 얼마 전 ‘클로저 47’에 대한 특허 신청을 냈다.
“손님을 직접 찾아가 모셔 오는 서비스가 저희가 지향하는 고객 우선의 경영입니다.” 야구장은 떠났지만 CEO로 변신한 이상훈의 ‘클로저 47’은 현재진행형이다.
미련없는 선택, 후회없는 도전
“저라고 왜 망설임이 없었겠어요. 미국에 갈 때, 돌아올 때, 은퇴할 때 모두 깊게 고민하고 생각을 했죠. 대신 그 판단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게끔, 결과는 나에게 주어진 몫이니까요.”
한 달 전 강남구 신사동에는 똑같이 ‘클로저 47’을 간판으로 건 자그마한 바도 개업했다. 밴드 ‘왓(WHAT)’의 보컬로 여전히 공연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주중에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뷰티샵을 경영하고, 해가 질 무렵부터는 신사동으로 건너가 ‘술집 사장님’으로 변신한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홍익대 근처나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한다.
“바닥이 다른 거지 사람 상대하는 일은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야구할 때도 그랬지만 할 수 있을까 이런 거 보다는 열심히 하면 다 되는 게 아닐까요.”
최근에는 지인들의 권유에 못 이겨 야구공도 다시 잡았다. 사회인 야구팀에 초청돼 비정기적으로 야구장을 찾고 있다. “2004년에 은퇴하고 공을 다시 만져본 건 처음이네요. 오랜만에 다시 하니 일반인과 다를 게 없던데요.”
야구는 언제나 마음의 고향
6년 전 5월26일. 미국 생활을 접고 친정팀 LG로 돌아온 이상훈이 대구 삼성전에서 복귀 첫 세이브를 기록한 날이다. 국내 최고의 좌완 투수로 기억되는 이상훈이 95년 기록한 선발 20승은 지난해 두산의 다니엘 리오스(22승ㆍ야쿠르트) 이전까지 11년 간 깨지지 않던 대기록이었다. ‘토종’으로는 아직도 마지막이 유효하다.
그런 이상훈은 류현진(한화)과 김광현(SK) 등 ‘좌완 영건’들의 우상이다. “은퇴 후 야구를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그 친구들을 잘 몰라요.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마운드에 서야 합니다. 무조건 씩씩하게 던져야 하고요.”
이상훈은 7년 간 몸담았던 LG의 수년간 부진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승패도 중요하지만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야구를 해야 하고,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만큼은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얼마 전 대구에서 공연을 마치고 올라오는 차에서 방문경기를 마치고 귀경 중인 LG 구단 버스를 봤다는 이상훈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웃었다. “야구선수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무슨 일을 하든 야구선수 이상훈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지만 짧지 않은 세월을 바쳤던 만큼 그게 싫지 않습니다. 단 그 후광으로 다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미련없이 차를 갈아탄 지 4년째, 이상훈은 마운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아직도 열심히 뛰어가고 있다.
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