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로 밀어올린 힘은 민주당 유권자들이 보여준 ‘변화’에 대한 열망이었다. 경쟁자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이에 맞서 국정수행 능력으로 ‘경륜’을 내세웠으나 민주당은 결국 오바마 의원을 선택했다.
오바마 의원은 유세 때마다 팝스타를 방불케 할 정도의 대중 동원력을 과시하며 호소력 있는 연설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오바마 의원 지지자들은 유세장에서 변화 의지를 상징하는 집단 주문처럼 돼버린 ‘Yes, We Can(그래, 우리는 할 수 있어)’을 연호하며 오바마 의원과의 일체감을 확인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오바마 의원 지지는 열광적이었다. 이들은 자원봉사를 자청, 표밭을 저인망식으로 누비며 승리의 원동력이 된 ‘풀뿌리 조직’을 일궈 나갔다. 이 같은 열기는 상당수의 백인 남성 및 여성들의 지지로 확산됐고 정치자금 모금에서도 앞서가는 계기로 작용했다. 오바마 의원이 흑색선전이나 인신공격 등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자제함으로써 얻은 신뢰감은 자신의 전 담임목사 제레미야 라이트의 ‘갓댐 아메리카(빌어먹을 미국)’ 발언 파문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선의 첫 관문이었던 1월3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오바마 의원이 거둔 예상 밖의 승리는 앞으로 있을 대역전 드라마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1월8일 뉴햄프셔에서 힐러리 의원에게 일격을 당한 이후 힐러리 의원의 대세론에 밀리는 듯했던 오바마 의원은 2월5일 22개주에서 경선이 치러진 ‘슈퍼화요일’ 대회전에서 사실상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힐러리 의원의 대세론에 확실한 제동을 걸었다.
이어 2월19일까지 계속된 루이지애나, 워싱턴 DC, 버지니아, 메릴랜드, 위스콘신 등 11개 지역 경선에서 오바마 의원이 이룩한 파죽의 11연승은 오바마 의원의 ‘역 대세론’에 불을 당기는 역사적 분수령이 됐다. 이때부터 오바마 의원은 경선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선언대의원에서 힐러리 의원을 앞서갈 수 있었다.
사실 오바마 의원은 11연승 이후 최근 20일 켄터키, 오리건주 경선까지에서는 오히려 힐러리 의원에게 승률도 떨어지고 확보한 선언대의원에서도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11연승이 오바마 의원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이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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