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촉발된 촛불문화제가 거리시위로 번졌다. 서울 도심 한복판인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서울 시내에서는 이달 들어 총 17차례의 촛불문화제가 열렸지만 도로를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거리시위가 벌어진 것은 처음이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경찰이 거리시위 참가자들을 집단 연행하고, 이 중 주동자 일부를 사법처리키로 함으로써 향후 ‘평화적인’ 촛불문화제는 거리시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거리시위
주말인 24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는 시작부터 이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여의도에서 집회를 끝낸 민주노총 조합원 1만8,000여명 중 일부와 전국교사대회를 끝마친 전국교직원노조 교사들이 집회에 속속 합류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모임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도 전국순례를 마치고 자리를 같이했다. 여러 단체들이 가세하면서 촛불문화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외에 초중등교육 자율화 조치, 한반도 대운하 건설 등 현 정부의 정책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무대로 바뀌게 됐다.
촛불문화제가 거리시위로 돌변한 것은 찰나였다. 오후 9시께 무대 뒤편에 있던 청년들 사이에서 “청와대로 가자”는 함성이 들리자 촛불을 들고 있던 참가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종로 차도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일요일인 25일에도 1,000여명은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계속했고, 이 가운데 400여명은 다시 거리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거리시위 왜 나섰나
촛불문화제를 공동 주관했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는 “경찰 저지가 예상됐지만 정부의 실정을 조목조목 비판하기 위해 청와대 진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철야 시위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발생한 돌발상황”이라며 “시민들의 호응이 높아 밤을 세우게 됐다”고 덧붙였다. 거리시위가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이뤄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양한 계층이 모인 촛불문화제가 전례 없이 뜨거운 열기를 지속하다가 일부의 제안으로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거리시위로 이어졌다는 뜻으로 일단 해석된다. 참가자들의 절반 가량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데는 상당한 정서적 공감대가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날 집회에서 정부에 대해 구체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부류는 주로 직장인과 대학생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동안 촛불문화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중고생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직장인 이모(48)씨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 나선 것”이라며 “오죽했으면 시민들이 거리도 뛰쳐나갔는지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생 유모(23)씨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 등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사안을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며 “정부는 거리시위까지 감행한 국민들의 요구를 겸허하게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복합적 요인 작용”
전문가들은 촛불문화제가 거리시위로 번진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들은 정부의 비현실적인 쇠고기 협상 자세와 국민은 안중에 없는 듯한 태도에 불만과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며 “각종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국민의 뜻은 분명히 드러나 있는데, 정부가 책임를 지려는 자세없이 문제를 대충 덮으려는 모습에 분노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시민단체와 정부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촛불문화제가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시위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또 “정부에 대한 불만이 해소되지 않아 극단으로 치닫게 됐고, 정부 입장에서는 밤샘 시위와 청와대 진출을 허용할 경우 모방시위가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강경 진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거리 불법시위에 대해 경찰이 강경 대응키로 해 정부와 시민단체간의 마찰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광우병국민대책연대는 이날 긴급성명을 내고 “강제 연행된 시민들을 즉각 석방하고, 쇠고기 수입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주장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향후 촛불문화제에 대한 어떤 탄압이나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해 불법집회를 저지하려는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허정헌 기자 강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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