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아주 좋아하는 선배교수가 있다. 거의 모든 면에서 나와 생각이 같은데 단 하나 인간에 대한 철학이 달랐다. 특히 한 후배에 대한 평가가 달랐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운동으로 잘 나가고 있는 한 후배교수였다. 그는 평소 삶의 방식에서 너무 문제를 많이 일으켜 주변사람들이 매우 싫어했다. 나 역시 그와 아주 좋지 않은 경험을 한 뒤 ‘인간 말종’이라고 생각해 상대도 안 하고 있다.
그러나 선배의 경우 그가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적인 문제이고 일종의 공적 영역인 운동이라는 면에서는 그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함께 운동을 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므로 인간이 안 된 사람이 진보적 이념을 가지고 운동을 한다고 해 보아야 그것은 다 거짓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이념보다 더 중요한 건 ‘싸가지’
요즈음 바로 이 이념과 인간이라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념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아니 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클래스 내지 격이라는 생각이다. 한 마디로, 나는 “나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진보적이지만 인간이 안 되고 격이 없는 사람보다는 보수적이어도 인간이 되고 격을 갖춘 사람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최근 이 같은 생각을 더욱 갖게 된다. 그 같은 생각을 갖게 한 것은 대표적인 ‘극우’ 내지 냉전적 보수 정치인인 김용갑 의원이다.
사실 그의 냉전적인 정치행태와 관련해 나는 평소 그를 매우 싫어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시 민주노동당의 두 명에 불과한 지역구의원 중 한 명이었던 조승수 의원을 위한 서명에 김 의원이 서명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조 전 의원이 주민들에게 불려가 음식물 쓰레기처리장에 대한 의견을 묻는 주민들에게 몇 마디 답을 한 것이 사전선거운동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죄명으로 기소를 당하자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서명을 한 것이다. 결국 이 서명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아 조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러나 자신과 정치철학이 전혀 다른 조 전 의원을 위해 서명을 하는 것을 보고 김 의원을 다시 보게 됐다. 이로부터 얼마 뒤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하자 그는 보수정권이 권력을 되찾았으니 이제 안심하고 정계를 떠나겠다고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특히 이는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이 개인적인 노욕에 눈이 멀어 진보정치운동을 위기로 몰고 간 것과 너무도 대조를 이루어 더욱 돋보였다.
계속 이어진 그의 행동은 여러 면에서 이념을 넘어서 인간의 격을 생각하게 했다. 그는 CEO대통령론을 주장하고 나선 이 대통령에게 국가는 기업이 아니고 대통령은 CEO가 아니라고 정면으로 충고를 하고 나섰다.
지난 주 의원총회에서는 “지금 한나라당이 여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최근 한나라당에서 논의되고 있는 관리형 대표에 대해서도 이는 “과거 대통령이 당 총재를 할 때 이야기”이며 “지금 관리형 대표가 나와서 정권을 도와주고 견제할 수 있겠느냐”고 쓴 소리를 했다.
이념과 인격의 격이 같았으면
사실 386과 참여정부, 나아가 개혁세력과 진보운동이 죽을 쑨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같은 격의 결여 때문이다. 그 동안 사방에서 들렸던 것이 “싸가지가 없다”는 비판이었다. 또 손학규 통합민주당대표를 앞으로도 계속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낙인도 바로 지난 대선에서 보여준 그의 격 없는 정치행보다.
개혁세력과 진보진영이 부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중 하나가 격을 회복하는 것이다. 정계를 떠나는 한 ‘골보수’ 정치인을 바라보면서 이념과 인간의 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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