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괴담보다 더 무서운 괴담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고 해서 찾아봤더니 내용이 딱 한 줄이다. “아직 4년 9개월이나 남았다.”
민심 이반이 무섭다. 5월 13일 보도된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22.6%에 불과했다. 그보다 한 달 전 50.0%를 기록했던 지지도가 반토막이 난 것이다. 최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고 국면 전환용으로 한미FTA 비준이나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쉽사리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정 쇄신의 초점은 신뢰 회복
경제ㆍ외교 등 주요 정책의 기조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모든 정책 추진의 기반이 되는 신뢰가 깨져 버렸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책은 국민의 동의를 얻어 수정하면 되지만, 한 번 깨진 신뢰는 좀처럼 복원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태생적 한계와 인사 및 의사결정방식의 실패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신뢰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향후 국정쇄신을 한다면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경제와 도덕을 배치되는 개념으로 설정하고 ‘747’처럼 비현실적인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현 정부의 태생적 한계다. 대선 때 이명박 후보는 원칙과 상식, 법치, 국민통합과 같은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경제만은 살리겠다는 지극히 현실 지향적인 약속을 했다.
상당수의 유권자들도 비록 이 후보가 도덕적 허물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을 잘 살게 해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를 지지했다. 이들은 이 후보와 미운 정 고운 정 든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계약을 맺은, 충성도가 약한 지지자들이다. 이 대통령의 지지기반이 취약하다는 얘기다. 공약과는 달리 이들을 잘 살 수 있게 해 줄 수 없다면 정권의 존립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현 정부가 7% 성장 목표를 포기하지 못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려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취약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출범한 현 정부는, 초기 인사를 통해 ‘실용’의 실체가 무원칙과 몰염치라는 인상을 주면서 급속한 민심 이반을 야기했다. 인사 실패의 요체는 ‘고소영 S라인’이니 ‘만사형통’이니 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인맥의 중용이나 인사를 둘러싼 권력다툼은 늘 있어왔던 현상이다. ‘강부자’도 돈을 많이 가졌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이 대통령처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역경을 이기고 성공한 사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같은 부자라도 별다른 어려움도 겪지 않고 위장전입을 통해 손쉽게 돈을 불린 이야기는 사람들의 불쾌지수를 높일 뿐이다. 위장전입과 논문표절이나 하다가 어떻게 대통령과 줄이 닿은 사람들을 중용한 것으로 비친 게 민심 이반의 원인이다.
민심 이반의 또 다른 원인은 지극히 비민주적이고 비체계적인 의사결정방식이다. 이번 쇠고기 수입협상 파문에서 드러났듯이 정부는 국내 의견수렴 절차를 생략하고 한미 정상회담 전 협상 타결이라는 잘못된 목표를 향해 돌진하다가 결국 세부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합의를 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말로는 ‘국민의 머슴’이라고 하면서, 국민의 생각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주요 쟁점들을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결정한 후 강력히 추진하는 식이다.
진정 국민 두려워하는 정치를
국민들은 대통령이 굳이 ‘국민의 머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CEO가 되어도 좋다. 하지만, 회사로 따진다면 국민은 CEO가 마음대로 부리는 종업원이 아니라, CEO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주다. <정관정요> 에서 백성을 물에 비유한 위징이 말했듯이,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능히 뒤엎기도 한다. 남은 4년 9개월 동안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아는 정치를 하기 바란다. 정관정요>
임원혁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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