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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카인의 정원

입력
2008.05.2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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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훈 지음/민음사 발행ㆍ313쪽ㆍ1만원

시인이자 일간지 문학 담당 기자인 정철훈(48)씨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6ㆍ25전쟁 직후, 미군과 태국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휴전선 인근 Y읍이 배경이다. 외국군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의 낙태 수술을 도맡으며 살아가는 의사 ‘요아킴’은 음부에 군용 손전등이 박힌 채 처참히 살해된 여성을 부검한다.

‘미옥’이란 이름의 그녀는 요아킴에게 창녀 환자들을 보내주며 편의를 제공받던 유흥업소 마담. 요아킴은 그녀가 관리하던 창녀의 이란성 쌍둥이를 받아낸 일이 있는데, 그 중 여자아이는 미옥에 앞서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됐다. 요아킴이 한때 거뒀던 벙어리 사내아이 ‘길명’은 상이군인과 함께 어울려 꾸덕꾸덕 생계를 꾸려간다.

작가는 두 건의 살인사건을 구심에 놓고 초점화자를 달리하며 펼치는 서사에 질서를 부여한다. 시적(詩的)이면서도 잘 읽히는 문장으로 빚어내는 묘사는 특히 압권이다. 요아킴의 병원 정원에서 전사자와 낙태아 시신을 양분 삼아 피어나는 빨갛고 노란 꽃들은 식물(성)에 대한 통념을 뒤집으면서 작품의 그로테스크한 정조를 짙게 한다. 낙태 시술 등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취재에 들인 작가의 공력을 짐작케 한다.

전쟁은 멎었지만 ‘카인의 후예’들은 기지촌에서 폭력과 살육을 멈추지 않는다. 제 누이를 살해한 미군을 돌로 쳐죽이는 길명의 모습에선 카인을 단죄하면서 그 자신도 카인이 돼버린 아벨을 떠올리게 한다. 시체로 더럽혀진 땅이 결국 전염병을 퍼뜨려 인간을 내쫓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에덴 이후 카인에겐 추방의 역사가 거듭될 일만 남았다. 작가의 도저한 비관이 읽힌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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