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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출판진흥기구부터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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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출판진흥기구부터 만들자

입력
2008.05.2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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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시대라는 21세기에 선진화 추구의 한국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육성해야 할 분야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운하 같은 토목공사가 아니라, 콘텐츠 테크놀로지(CT)여야 마땅하다. 한미FTA 협상에서 미국이 내심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농수산물이나 자동차가 아닌 지적재산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콘텐츠 산업의 근본은 출판이다.

그런 면에서 쇠고기 파동으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이명박 대통령이 국제출판협회(IPA) 총회 개막식에 직접 발걸음을 해 출판진흥정책을 펴겠다고 말한 것은 방향타를 제대로 잡은 것이다. 하지만 개막식에서 이 대통령이 발표한 몇 가지 진흥방향은 꼭 필요한 것이긴 하되 구체적 실천방향도, 실행주체도 없는 단순나열에 불과해 이 또한 공염불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4월에 발표한 ‘지식강국의 성장동력’인 ‘출판지식산업 육성방안’이라는 것은 노무현 정부시절에 출판 관련단체의 간부들과 몇 전문가가 각기 졸속으로 제안해 나열한 것들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가장 큰 문제는 방안은 있되 실행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출판지식산업을 육성할 의지가 확실하다면 먼저 장기적인 전략적 관점에서 진흥을 주도할 법정 기구부터 설치해야 할 것이다.

지금 출판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국영 출판기업의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왔다. 그 결과 지금 몇 대형 출판사의 매출액은 우리나라 전체 매출에 맞먹을 정도로 성장했는데, 그 출판사들마저 협력 체제를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다. 이웃 일본의 몇 대형출판사 매출 또한 우리 출판 전체 매출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들은 새로운 흐름에 적응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

한때 우리가 기술이 세계 제일이라고 자부했던 전자출판을 보자. 우리는 아직 방향타도 잡지 못해 협회나 업체들이 휘청거리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매출이 세계 최고이면서 이익을 내고 있다고 자랑하는 수준이다. 일본도 이제 구체적인 비전과 미션을 마련하고 개별 기업들이 크로스미디어전략을 착착 실행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서점은 2,000여 개도 남지 않았는데 출판사는 3만 개가 넘는다. 물론 그 중에서 90% 이상은 1년에 신간을 단 한 권도 펴내지 못하는 무실적 출판사다. 단행본 출판사가 최고로 기록한 매출이라야 고작 400여 억 원에 불과하다. 이런 올망졸망한 출판사 규모로는 장기적 전략수립은커녕 당장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급급하다. 그러니 국가가 나서서 진흥을 위한 확실한 둑부터 막아야 한다. 그 둑이 바로 한국출판진흥위원회 또는 한국출판진흥원이 되어야 마땅하다.

절대 다수의 출판인들이 새로운 진흥기구를 갈망하고 있다는 지표가 속속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량한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몇 단체의 대표들이 진흥기구의 설립을 반대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출판이라는 염불에는 뜻이 없으면서 일회적인 이벤트성 행사에 즉흥적으로 집행되는 정부의 직접 지원이라는 잿밥에만 잔뜩 눈독을 들여왔다. 그들에게서 비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따라서 하루 빨리 진흥기구라는 새로운 둑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구에서 실제적인 진흥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머지않아 국민이 모두 포식할 수 있는 밥상이 차려질 수 있다. 예산이 문제라면 최우선 과제를 실천할 소형 기구로 출범하고 점차 기구를 확대해 나가면 된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진정 ‘실용’에 값하는 정책 집행일 것이다. 빠른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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