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의 미’를 추구하는 종류의 현대예술은 종종 종교적이 된다. 그러나 종교적 메타포를 통해 그 너머의 소실점을 제시하는 일을, 당대적으로 유의미한 형식으로,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빛과 공간의 작가” 제임스 터렐(65)은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다.
1966년 11월 터렐은 작은 호텔을 빌려 창문들을 모두 틀어막았다. 그리고 빛을 재료 삼아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투사 작업’에서 작가는 프로젝터로 방의 모서리에 빛을 투사해 기하학적인 도형을 만들었다.
그렇게 형성된 빛의 기하 도형을 바라보노라면, 점차 공간 감각에 변화가 일어난다. 평면이 입체로 보이거나 아니면 실제의 벽 너머로 확장된 공간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 이런 작품들은 기하학적 형태로 예술의 근원을 탐구한 미니멀리즘 조각에 대한 화답의 성격을 띤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단일벽 투사’ 연작은 그 양상이 좀 다르다. 편평한 벽면에 빛을 투사해 다소 몽롱한 ‘빛의 사각형’을 만드는데, 이 2차원의 이미지 아닌 이미지는 보다 확실한 초월적 경험을 제공한다.
오랫동안 벽면을 응시하노라면, 감각기관들이 그에 반응하고, 결국 사각형이 빛을 발하는 얇고 매끈한 막처럼 보이거나,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의 입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후 이런 투사 작업들은 다양하게 변주됐는데, 그 근본엔 변함이 없다. 1974년에 시작된 ‘하늘공간’ 연작도 마찬가지.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시되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지만, 바탕은 불변이다.
‘하늘공간’은 갤러리의 천장에 직사각형이나 원형 등의 모양으로 창을 뚫어 놓은 간단한 컨셉트의 작품. 사실, 관객들이 갤러리 공간에 눕거나 앉은 채 여유로운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 자체가 예술이다.
물론 작가가 진정으로 아끼는 작업은 따로 있다. 터렐은 1977년 각종 후원금을 총동원해 미국 아리조나 사막에 있는 로덴 분화구를 구매했다. 이후 이 휴화산의 분화구는 그에게 작품의 배경이자 일부 혹은 그 총체가 됐다. ‘빛과 공간의 예술’을 위한 이상향으로 낙점된 이 우주적 공간은 아직도 공사 중.
1998년에야 분화구 아래로 건축공간들이 갖춰졌는데, 그 지하 공간은 첫째, ‘해와 달의 공간’, 둘째, ‘분화구의 눈, 남쪽 방’, 셋째, ‘동측 알파 터널’,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각 공간은 천문학적 변화에 따라 자연의 빛을 끌어들이는데, 작가의 청사진에는 2만5,800년 동안의 천문학적 이벤트가 포함돼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로덴 분화구는 극히 제한된 특수층 관객의 ‘순례’만을 허락했고, 대중에게 공개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 누굴 보라고 만든 작품일까? 작가는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나는 내 작업이 단 하나의 존재, 단 한 명의 개인을 위해 제작됐다고 느낍니다. 그게 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실 안 그래요. 내 작업은 이상화된 관객을 위한 겁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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