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추아 지음ㆍ이순희 옮김/비아북 발행ㆍ560쪽ㆍ2만5,000원
지금 중국은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한 움큼 안 되는 티베트의 숨통을 틀어쥐고 못살게 구는 심술쟁이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노련한 중국이 그 같은 ‘외교적 선택’을 한 것은 왜 일까? 이것은 하나의 징후다.
중국은 “불관용과 외국인 혐오, 인종적ㆍ종교적ㆍ민족적 순수성”을 고집함으로써, 다극화된 세계 질서 재편에 개입할 능력을 상실해 버린 것은 아닐까. 책의 표현을 따른다면 중국은 이제 ‘상대적 관용’의 미덕을 잃어 버린 것이다.
적어도 미국은 그런 선택을 결코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제국이 아닌 세계 최초의 초강대국이자, 군사 제국주의의 목적을 가지지 않은 최초의 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마저 변해도 한참 변했다. 아니, 가려져 있던 본질이 발현된 걸까. 1990년대 갑자기 출현한 단극 체제에서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걸어간 길은 이러했다. “세계적인 패권을 획득하고 유지할 목적이라면 강압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고, 박해는 그 대가가 지나치게 비싸다.”(12쪽)
예일대 법학과 교수 에이미 추아(蔡美儿ㆍ46)는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뭇 제국들의 역사를 개관하는 길을 택하고 교훈을 도출했다. 크게 보아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돌변한 미국을 두고 ‘미국 제국’이라 일컫는 학자들과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그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유일의 대제국으로 무소불위의 헤게모니를 휘두르고 있는 미국이 급변하는 세계 속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며 권고한다. 그를 증명하기 위해 책은 역사속으로 들어가지만 지향점은 언론의 칼럼보다 더 현실 개입적이다.
책은 역사라는 경로를 통해, 미국을 포함해 제국적 존립 형태를 지향하는 국가들은 왜 쇠락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 준다. “제국 존립의 관건은 경쟁자들과 비교해서 더 관용적이냐 아니냐 하는 데 있다”는 지적은 바로 그들의 무력적 성향을 향한 경고다.
책은 제국 존립의 근거로 ‘접착제’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무수한 이질적 하위 공동체들을 결합시키는 힘이다. 미국이 정치적 동맹은 물론 스타벅스, 코카콜라, 수퍼모델 등 문화 상품까지 동원한 ‘접착제들’의 힘으로 강고한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있는 듯 했으나, 이제 그 접착력을 소실해 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관용을 상실한 현재의 지배 형태는 야만적인 몽골 제국에 훨씬 가깝다는 말은 야유에 가깝다. 관용에 의지할 때는 권력이 성장하지만, 불관용에 의지할 때는 권력이 쇠퇴한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로마인의 경지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여왕이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으로 피정복민을 받아 안은” 로마인은 진정한 세계인이었다는 것이다. 당시를 두고 “현명한 황제들과 종교적 관대함이라는 두 축으로 유지된 때”라고 규정하는 저자의 목표는 또 다시, 이 시대 미국 상황을 겨냥한 것이다.
한편 당나라를 이야기할 때, 저자의 어조가 우호적인 것은 그녀가 중국계이기 때문이 아니다. 당시는 중국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개방적이고 세계주의적이며, 인종적ㆍ종교적으로 관대해 원거리 피지배민들도 충성을 바쳤다. 성공적인 초강대국의 모델이다.
그러나 간신의 발호에다 불관용이라는 병이 창궐, 당 역시 로마처럼 수명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중국은 ‘자민족 중심주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불관용의 덫이 오스만, 명, 무굴 등 대제국을 쇠락시킨 과정이 박진감 있게 전개된다. “미국이 전략적 관용의 정신을 잃지 않고 제국을 건설하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면, 미국은 몇십년이 지난 후에도 기회의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은 경고에 가깝다.
저자는 중국계 미국인 2세로, 국제 무역과 인종 갈등에 관한 권위자이다. 자유 시장 질서의 패권을 선언한 2003년의 <불타는 세계> 가 ‘이코노미스트’ 지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급변하는 국제 역학 관계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로 부상했다. 이 책은 역사적 해박함과 입담으로 독자들에게 혜안을 제공한다. 책이 미국의 반명제로 제시하는 현실적 대안은 중국, 유럽연합, 인도 등이다. 불타는>
책의 미국 딴죽 걸기는 더러 노골적이다. “세계의 패권 국가가 현대의 계몽주의적인 의미에서 참된 관용을 베푸는 것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오늘의 세계적인 초강대국, 그것도 과거 몸소 식민지 처지를 경험했던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합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일이다.”(281쪽) ‘충격과 공포’라는 카드를 한번 써먹었던 미국이 답을 들려줄 차례다.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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