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사실상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23일 국회에서는 한 편의 허무개그가 연출됐다. 한미 쇠고기 협상 책임을 물어 야3당이 발의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부결되는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투표 절차에 들어갈 때만 해도 기세등등 했던 야3당은 내부 반란표로 인해 해임건의안이 부결되면서 혼돈에 휩싸였다.
오후 3시25분 본회의가 시작되는 순간까지도 야3당의 공조는 확고해 보였다.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3당 소속 의원들이 속속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어느새 해임건의안 가결 정족수(146명)를 채워갔기 때문이다.
12분 뒤 투표가 시작됐다. 피를 토하는 증세로 병원에 입원 중인 민주당 장경수 의원이 뒤늦게 앰뷸런스를 타고 국회에 도착하는 바람에 투표는 4시35분이 돼서야 마감됐다. 이 와중에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심재철 수석부대표가 “빨리 투표를 끝내라”며 임채정 국회의장에게 항의하다 민주당 의원들과 말싸움을 벌이는 소동도 빚어졌다.
최종 투표 인원은 149명. 민주당 지도부는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투표함을 열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개표에 참여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결됐다는 표시였다. 결국 해임건의안 찬성은 가결 정족수에 6표나 모자라는 140표, 반란표는 무려 9표(반대 5ㆍ기권 2ㆍ무효 2표)나 됐다.
예상밖의 부결에 해임건의안 표결을 총지휘했던 김효석 민주당 원내대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같은 시각 최고위원 연석회의를 진행 중이던 한나라당 지도부는 부결 소식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날 표결에는 민주당 128명, 자유선진당 8명, 민주노동당 6명, 무소속 6명, 창조한국당 1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투표에 참여한 야3당 의원만 해도 142명이나 돼 최소 2표는 반란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해임건의안이 부결된 뒤 우리당 의원들은 모두 흥분한 반면, 선진당 의원들은 조용히 퇴장했다.
심대평 대표도 본회의장에 나왔지만 투표를 안 했다. 손학규 대표의 청와대 단독 회동 등 민주당의 독주에 불만을 품고 부결시킨 것 아니냐”며 선진당에 의심의 눈초리를 돌렸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등을 둘러싸고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어 온 보수 성향 의원들이 많아 이들로부터 반란표가 나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오후 2시 각각 의원총회를 열어 기 싸움을 벌였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야당이 이명박 정권의 발목을 잡으면서 여러 가지 법적 수단을 강구해 교묘하게 괴롭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의총 결과, 본회의에서 몸싸움 등으로 표결을 막는 방식을 택하지 않아 사실상 해임건의안 통과를 방조했다.
반면 김효석 원내대표는 “국민 식탁에는 불안을, 축산농가에는 절망을, 우리나라에는 모욕을 안겨준 쇠고기 협상의 주무 장관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소속 의원들에게 해임건의안 처리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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