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0년 만에 만난 친구 K(30)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직원이 돼 있었다. 학창시절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단정하고 충성스러워 보이는 직장인이었다. 별난 문제아까진 아니어도 소심한 말대꾸와 대들기로 유명했던 그의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재치있는 말솜씨로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곤 했던 그는 ‘불온한 만화’를 끼고 다니던 일명 ‘불량소년’. 그의 예측불허했던 ‘불량기’는 어디로 갔을까.
1983년, 어두침침한 만화방에서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된 ‘아기공룡 둘리’를 보며 배꼽을 잡던 소년들은 어느덧 30대 중후반의 착실한 넥타이 부대로 성장했다. 어머니들은 집주인인 어른 고길동을 ‘길동씨’라 부르고, 뒷주머니에 손을 찔러넣는 이 불손한 만화 캐릭터의 출판을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지만 소년들은 개의치 않았다.
25년이 훌쩍 지난 2008년, 대한민국 토종 캐릭터로 굳게 자리매김한 둘리는 새로운 버전의 TV 시리즈로 복귀할 예정이다. ‘2008 아기공룡 둘리’(가제)의 총괄감독이자 원작자인 만화가 김수정(58)씨를 만나 둘리와 함께 성장한 30, 40대의 불량감성을 추억해본다.
불량만화, 이래도 볼래?
‘아기공룡 둘리’는 어린이의 눈으로 본 가족 이야기다. 어린이의 세계를 그렸으면서도 주인공인 둘리가 굳이 공룡인 이유는 엄격했던 심의규정에서 철퇴를 맞을까 우려했던 김씨의 작전이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그 시대에 만화가는 조선시대로 치면 가파치랄까, 만화는 일종의 불량문화로 취급받았죠. 이맘때가 되면 검찰과 경찰이 합동단속을 ‘떠서’ 만화가게를 무작위로 뒤지고 종로 한복판에서 화형식을 했을 정도니까요. 심의는 까다로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말이 되지 않았지. 어린 아이는 고운 말을 써야 한다며 ‘도둑놈 잡아라’라는 대사에서 ‘놈’ 자를 빼게 했고, 경찰이 도둑을 못 잡는 스토리는 교육적이지 않다면서 빼도록 했으니까.”
감히 어른한테 대들어?
김씨는 어른과 어린이를 악인과 선인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거나, 완전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구분하는 것은 드라마의 리얼리티가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보통 아동만화 하면 이야기 구조나 대사가 단순하고 전형적이에요. 아이들을 무시하는 거죠. 한때 둘리는 어른한테 대드는 못된 캐릭터로 비쳐졌는데, 둘리가 못됐다기보다 그게 애들이 가진 감성이에요. 우리 어릴 때 그랬잖아요. 갖고 싶고 먹고 싶고 보고 싶고 놀고 싶은 거예요. 하지만 현실은 100% 수용이 안되니까 어른 입장에선 제어를 해야죠.
애들이 해달라는 거 다해주면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고 집안이 거덜날 걸요. 그게 길동씨 역할이에요. 따지고보면 길동씨는 불행한 시대에 살았던 가장이에요. 늘 먹고 사는 일에 몰두해서 아이들에게 최고로 잘해준다는 게 고작 놀이동산이나 뷔페식당 데려가는 일이었을 때니까요.”
둘리와 그 친구들의 사연
둘리와 둘리 친구들은 짓궂고 제멋대로지만 알고보면 외롭고 불쌍한 아이들이다. 1억년 전 엄마와 떨어져 빙하를 타고 떠내려와 밤하늘을 보며 엄마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는 둘리, 타임머신을 타고 가려다 불시착한 도우너와 출생지도 모른 채 서커스단에서 도망친 타조 또치, 유학 간 부모님 곁을 떠나 친척집에 버려진 세살배기 희동이까지.
“서커스단에서 눈치밥만 먹고 자란 또치는 상황판단이 빠르며 기회주의적이고, 외계에서 온 도우너는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단순무식하고, 애정결핍인 희동이는 고함치고 떼쓰고 폭력적이죠. 다들 자존심이 세고 모난 성격이지만 알고 보면 고아들이에요.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면서도 뭉칠 수밖에 없어요. 딱히 갈 데가 없으니까. 이들이 모두 우리의 모습, 우리 사회의 군상 아닐까요.”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가족
한때 불량만화의 오명을 썼던 둘리는 1987년 KBS TV 시리즈를 거쳐 가족만화로 거듭나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이제는 벌써 은퇴를 앞둔 아버지 세대도 TV 앞으로 끌어당겨 피 한 방울 안 섞인 채 좌충우돌하는 이들 가족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툭하면 울고 떼쓰고 고함치는 희동이를 감싸주는 건 둘리에요. 한창 부모 품에서 사랑받아야 할 애가 덩그러니 친척집에 떠맡겨진 거니까 얼마나 외롭고 피폐하겠어요. 둘리는 같은 처지인 희동이를 딱하게 생각하고 감싸줘요. 희동이를 돌보면서 자기가 받지 못한 사랑을 대신 주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거죠.
길동이는 둘리를 눈엣가시로 보지만 둘리가 없으면 누가 희동이를 돌보나, 그런 아쉬움이 있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죠. 둘리는 못났다고 보기 싫다고 내치지도 못하는 가족이에요. ‘아기공룡 둘리’는 우리 시대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 김수정
1975년 한국일보 주최 소년한국도서공모전에서 만화 ‘폭우’가 입상해 데뷔한 그는 ‘1남 4녀 막순이’ ‘일곱 개의 숟가락’ 등 휴먼스토리 만화작가로 이름을 얻었다. ‘아기공룡 둘리’로 큰 인기를 얻은 후 둘리 캐릭터의 해외 진출을 목표로 현재 ㈜둘리나라를 운영하고 있다.
둘리 캐릭터인형 등의 라이선스 계약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김씨는 “1996년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개봉한 후 해외 진출을 고려해왔지만 아직은 미흡하다는 생각에 제작을 미뤄왔다”며 “호주, 유럽 등지에서 공동투자를 제안해오기도 했는데 공동작업인 만큼 외국의 정서를 반영해야 하는 등 제작여건이 우리와 맞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SBS 방영 예정인 ‘2008 아기공룡 둘리’는 2006년 공동제작 의뢰를 받아 둘리 탄생 25주년에 맞춰 방송하는 것. 김씨는 “이번 TV 시리즈의 반응이 좋으면 26부작을 추가, 총 52부작으로 만들어 본격적으로 해외무대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 "2008년 새롭게 태어난 둘리 만나요"
올해로 25주년이 된 아기공룡 둘리는 빨강머리 앤(100주년), 미키마우스(80주년) 등 외국의 만화 캐릭터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을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토종 만화 캐릭터다.
1983년 4월부터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된 ‘아기공룡 둘리’ 오리지널 만화는 끝난 지 오래지만, 둘리는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1987년 KBS에서 방송한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도 한국 TV 애니메이션 중 가장 사랑받은 작품으로 꼽히고, 1996년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아기공룡 둘리 _ 얼음별 대모험’은 당시로서는 적은 숫자라 할 수 없는 35만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원작자인 만화가 김수정씨는 10월 SBS 방송을 목표로 새롭게 26부작 애니메이션을 제작 중이다. ‘2008 아기공룡 둘리’(가제)에서는 기존의 가족 이야기 틀에 세계 최대의 밀림인 아마존의 황폐화와 오랑우탄 멸종 등 환경 문제를 담는다.
둘리의 활동 무대였던 서울 쌍문동 골목과 시장통, ‘요리 보고 조리 봐도’로 시작하는 둘리 테마송도 바뀐다. 그림 색깔은 한층 밝아졌지만 둘리의 모습은 초창기와 가깝게 사납고 짓궂은 공룡의 얼굴과 비슷하다.
토종 캐릭터 둘리의 생명력은 어디서 나올까. 최대 강점은 친숙한 캐릭터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2006년 실시한 캐릭터 선호도 조사에서 둘리는 1위를 기록했다. 현재 700여개 업체에서 1,000여종에 이르는 둘리 관련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2006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소수민족언어학교연합회가 연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는 여덟살이던 한국 교포 이해원 어린이가 평소 비디오로 즐겨 보던 둘리를 그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원작 만화를 보지 않은 세대도 캐릭터를 통해 둘리를 친숙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둘리의 생명력이 단지 캐릭터의 매력에서만 나온다고도 할 수 없다. 뚜렷한 캐릭터에다 매회 확실하게 완결되는 에피소드, 도우너와 또치 등 새로운 캐릭터들의 등장과 함께, 2~3회에 걸친 대형 사건을 만들어내는 작품의 구성은 요즘의 시즌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시대를 앞선 전개방식이다. 그래서 만화 전문가들은 “ ‘아기공룡 둘리’ 원작은 지금 봐도 시대를 앞서간 걸작”이라고 평한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 페페·꺼벙이·주먹대장 "그리운 얼굴 기억나세요"
한 달에 한 번 만화를 ‘책’으로 접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넷은 물론 없고 비디오도 부잣집 아이들이나 구경하던 물건이었기에, 월간 만화잡지의 인기는 대단했다. 보물섬, 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 소년경향…. 다음달 호가 나오는 20일 즈음이면 퇴근길 아버지의 손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에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앞의 몇 페이지만 컬러이고 나머지는 거무튀튀한 재생지에 조악하게 인쇄된 만화책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책장을 넘기며 로켓 주먹을 날리고 시속 200km의 마구를 던지고 무림을 제패했다.
판타지에 목말랐던 1970, 80년대 유년에게 월간 만화잡지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자 투니버스였고 싸이월드였다. 어느덧 주식시세표와 부동산 경매 공고를 뒤적이는 세대가 돼 버린 그 시절의 열혈 만화 독자들, 잠깐 추억 속 책장을 넘겨 보자.
■ 보물섬 – 둘리, 하니, 페페, 핑크
1980년대 초 ‘보물섬’의 지면을 채우던 빛나는 이름들은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출전 명단 못지않게 휘황찬란하다. 허영만, 이현세, 이상무, 김영하, 강철수, 고유성, 윤승운, 백성민… 훗날 각각 하나의 가(家)를 이룬 작가들이 그 시절 같은 날 원고를 마감하느라 땀을 뺐다.
허영만의 ‘태풍의 다이아몬드’가 ‘다음호에 계속’이라는 글자로 끝을 맺은 다음 페이지에 이어지는 연재는 이현세의 ‘검객 스카라무슈’!
너무나 유명한 둘리와 하니 외에도 ‘보물섬’에서 탄생한 인기 캐릭터는 많다. ‘고봉이와 페페’(김영하)를 기억하는가. 펭귄별에 살다가 우주선이 불시착해 지구로 온 그 엉뚱한 녀석 말이다. 지금은 재개발 철거촌에서나 볼 수 있는 당시 중산층 양옥을 배경으로, 투명보자기와 ‘P’자가 새겨진 야구모자와 함께 우리는 정말 ‘명랑’했다.
소녀들은 ‘요정 핑크’(김동화)에 심취했다. 이웃나라 레인보우 왕자와의 정략결혼을 피해 지구로 피신한 그린우드 왕국의 공주 핑크에, 소녀들은 속절없이 감정이입을 당했다.
■ 소년중앙 – 꺼벙이, 로봇 찌빠
요즘도 이런 아이가 있을까. 공부는 뒷전이고 농구를 잘 해보겠다고 발에 스프링을 단 채 허둥대고, 잔소리하는 아버지에게 어설프게 대들다가 꾸지람만 듣고. 큼지막한 땜통을 머리에 달고 눈은 늘 반쯤 감겨있는 ‘꺼벙이’(길창덕)다. 이웃과의 소소한 일상 속에 짓궂지만 해맑은 웃음을 전해주던 아이다. 너무나도 그리운, 진짜 ‘아이’의 모습이다.
따발총으로 변하는 코,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변신하는 머리의 꽃 한 송이, 도청장치가 장착된 귀. 그렇다, ‘로봇 찌빠’(신문수)다. 그저 귀여웠었는데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생각하니 무척 많은 메타포를 지닌 캐릭터다.
군사용으로 제작됐으나 오류가 발견돼 버려진 로봇, 하지만 인간보다 더 따뜻한 감성을 지닌 찌빠. 아, 할리우드에서 21세기 들어서야 만들어내는 캐릭터가 아닌가! ‘로봇 찌빠’는 분명 시대를 앞선 작품이었다.
■ 어깨동무 – 주먹대장
팔뚝이 허벅지보다 굵은 이 댕기동자는 독고탁이나 까치보다 연배가 높다. 김원빈이 1958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주먹대장’은 1970년대 초부터 10년 동안 ‘어깨동무’에 연재됐다.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차범근의 ‘올칼라 브로마아이드’가 간간이 별책부록으로 끼워 나오던 무렵, 주먹대장은 불의와 맞닥뜨리면 불같이 변신하고픈 소년들의 로망이었다. 얼굴의 반을 차지하던 몰캉몰캉한 눈망울에 지나치게 비대하던 오른쪽 팔뚝. 하여튼 권선징악이 관념적이던 군사정권 시절, 주먹대장은 만화 속에서나마 권선징악을 행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 잊혀진 만화 캐릭터들…
도술과 심술의 경계가 모호한 머털도사, 날카롭고 찝찔한 사랑을 보여준 까치와 엄지, ‘마지막’ 사나이 독고탁.
30, 40대의 머릿속에 각인된 만화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점점 잊혀져 간다. ‘내일의 죠’(1970)의 죠, ‘은하철도999’(1979)의 철이와 메텔 등 일본 만화 캐릭터가 꾸준한 생명력을 지니고 관련 상품으로 판매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둘리와 하니 정도를 제외하고, 1980년대의 우리 만화 캐릭터들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만화 및 애니메이션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는 다양한 캐릭터를 개발하려는 노력보다 한번 인기를 끈 캐릭터를 ‘우려먹는’ 일이 잦았다. 까치와 엄지라는 캐릭터는 성격과 배경을 바꿔 여러 장르의 작품 속에서 재탕, 삼탕됐다.
때문에 까치와 엄지만의 매력은 옅어졌고, 캐릭터로 상품화되기 힘들었다. 독고탁이라는 이름과 생김새는 기억에 남아도 그가 어떤 캐릭터였는지 전혀 생각해낼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면 일본 캐릭터는 ‘만화 _ TV 애니메이션 _ 극장판 애니메이션 _ 캐릭터 상품’으로 이어지는 일관성있는 재생산 구조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한다. 이 단계를 착실히 밟은 ‘아기공룡 둘리’가 한국산 캐릭터 가운데 가장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 작가가 한 가지 캐릭터를 꾸준히 파고들 수 있게 지원하지 못하는 만화 시장의 한계도 원인이 됐다. 금수조치 해제로 일본 캐릭터들이 시간차 없이 한국 팬의 인기를 끌게 된 것도 국산 캐릭터의 개발과 상품화에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