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격이 산 만한 선수와 비호같이 날쌔게 생긴 선수가 힘과 기를 겨루고 있다. 헤드락으로 상대방 머리를 바짝 조이고 공포의 코브라트위스트로 팔다리와 허리를 무지막지하게 꺾어 놓은 후 넉사자굳히기로 항복을 받아내려다 ‘와’ 하는 관중의 환호에 신기술 풍차돌리기를 서비스하듯 보여준다. 그런데 누워있기도 힘들다는 표정으로 공격을 당하던 선수가 별안간 일어서서 미사일 드롭킥을 날린다. 거기다가 필살의 박치기까지.
밤 9시가 넘은 시간, 하얀 칠판에 레슬링 장면이 상영되고 있다. 이것을 숨죽여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타이거 마스크 .김일. 헐크 호건 .마초맨등 프로레슬링 선수들의 황홀한 기량에 감동하고 환호하다가 직접 프로레슬링에 뛰어든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이곳은 동국대 사회교육원에 개설된 레슬링 학과.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사실 아래 재미와 감동을 주고 프로레슬링을 스포츠 종합예술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바디크러쉬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올 4월 개설됐다.
“프로레슬링은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먼저 쓰러지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스포츠입니다. 모든 스포츠는 내가 맞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러나 레슬링은 맞는 것을 먼저 배우고 잘 맞는 사람이 더 유능한 선수입니다. 프로레슬링의 철학은 합의된 반칙을 받아주는 것입니다. 약속되지 않은 반칙을 하는 것은 프로레슬링이 아닙니다” 장태호 교수의 열강에 13명 예비 반칙왕들의 몸은 바짝 달아 올랐다.
지난 15일 동국대 체육관에 매트리스를 깔고 처음으로 진행된 실기 연습에서 멋지게 드롭킥을 선보여 동료들의 박수를 받은 이철희(28)씨는 유명 외국계 화장품 회사 직원이다. “뛰고 조르고 차다 보면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말 그대로 확 날아갑니다” 틀에 꽉 맞춘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칙왕이 되려는 이씨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프로레슬러 이철희로 명함을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이 학과에서 실기 강사를 하고 있는 윤강철(35)씨의 직업은 택배원이다. 그는 택배를 하다가 시간이 나면 아무 곳에서나 곧바로 체력 훈련을 한다. 나무에 고무샅바를 매고 근력 훈련을 하고 공원의 시멘트바닥에서 날고 구른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윤씨는 2005년 신인 프로레슬링 선수로 선발되어 멕시코 레슬링 ‘루차리브레’을 배운 정통 레슬링 선수다. “한국 프로레슬링은 고사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현재 시합을 할 수 있는 선수는 12명뿐 입니다.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오십을 넘었구요” 한국레슬링 부활에 도움에 될 까 하여 직장인 초보 레슬러들에게 고난도기술을 선보이고 있는 윤씨는 그나마 열정 넘치는 이런 자리가 고맙기만 하다고 한다.
링에서 포효하며 관중의 환호를 받는 선수가 부러워 프로레슬링을 평생의 직업으로 생각한다는 고교 3년생 김동현군은 레슬링을 배우러 외국 유학을 준비중이고 양식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배정구(30)씨는 프로레슬링을 배워 식사를 하며 경기구경을 하는 레슬링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어한다. 체조 선수처럼 몸을 날리는 고난도 기술을 선보여 동료들의 입을 벌어지게 한 속초에서 올라온 최성용 씨는 아이들에게 챔피언 벨트를 맨 아빠를 보여 주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링에서 멋진 묘기를 선보이는 날을 기대하며 몸을 날리는 사람들. 그들은 마스크를 벗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어한다. “타이거 마스크 반칙왕이 바로 접니다. 놀라셨죠”
글.사진=신상순 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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