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하 지음/생각의 나무 발행ㆍ299쪽ㆍ1만2,500원
‘이강 전하(순종의 아우인 의친왕)가 손수 고르셔 신고 계시는 만월표고무신’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하오’ ‘가짜 거북선표가 많사오니 속지 마시고 물결 바닥을 사십시오’
1922년 9월 한 일간지를 들춰보면 고무신 광고대전(大戰)이 한창이다. 왕족이나 거북선을 내세워 민족감정을 자극하기도 하고, 질기다거나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등 품질을 강조하기도 한다. 표현만 예스러울 뿐 치열한 판매 경쟁이 그대로 느껴진다.
평양의 일본인 잡화상 ‘내덕상점’ 사환 이병두는 일제 고무단화가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조선식 고무신을 만들어보자’며 무릎을 쳤다. 남자용은 짚신, 여성용은 코신 모양을 본뜬 우리식 고무신은 출시되자마자 ‘대박’을 터트린다. 1921년 2개이던 고무신 공장은 33년 72개로 늘어났고, 35년 고무제품의 95% 이상이 고무신일 정도로 큰 시장이 만들어졌다.
소설가인 저자는 조선 시대 ‘말업(末業)’이라 천대 받던 장사와 기업활동이 어떻게 기지개를 켜는지, 일제 침략으로 민족 자본이 어떻게 부침을 겪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여러 업종에 대한 다양한 얘기들이 맛깔스러운 문체를 통해 눈에 잡히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저자는 “우리나라 재계사는 45년 이전은 편입하지 않는다”며 “(경성상계는) 아직 누구도 가보지 못한 우리 경영사의 테두리까지 도달하는 데 맨 먼저 통과해야만 할 텍스트와 이야기라고 단언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김성수와 민영휘, 최창학을 식민지 시대 조선의 3대 재벌로 꼽고 재산내역을 분석하고 평가했다. 신문사 사장보다 더 많은 돈을 저축했던 기생들과 자동차와 금광으로 순식간에 거부가 된 사람들, 새롭게 등장한 백화점과 영화관, 요리점의 경쟁 등이 펼쳐진다. 술술 읽어나갈 수 있지만 상업사보단 도시문화사로 보이는 대목도 있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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