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창 지음ㆍ송희준 옮김/글항아리 발행ㆍ408쪽ㆍ1만6,000원
옛말에 “집안이 가난하면 현명한 부인을 생각하게 되고, 나라가 어려우면 충신을 생각하게 되는 법(家貧思賢妻 國難思忠臣)”이라 했다. 미국발 우환(牛患) 등에 휘둘려 집권 100일만에 2할대 지지율로 떨어진 대통령과, 제 2의 개국 상황에서 이른바 고소영 내각을 나라 살림꾼으로 둔 국민들에게는 더욱 새삼스럽기만 한 말이다.
“대포로 쳐서 큰 선박을 부러뜨려/ 양놈의 살갗을 저며 육포로 만들었네/ 요기가 확 틔어 바다의 기운이 맑아지니/ 백성들은 편안하고 즐겁게 누에 치며 밭을 갈았네(176쪽)” 고종 8년(1871년) 미국인들이 군함 5척을 이끌고 강화도에 쳐들어와 통상 관계 수립을 요구했던 일(신미양요)을 알고, 그냥 넘겨 버릴 수 없었던 조상은 21세기의 후손들을 어떤 시선으로 굽어보고 있을까.
불과 19살에 저 헌걸찬 글을 지었던 구한말의 3대 문장가 명미당(明美堂) 이건창(李建昌ㆍ1852~1898)의 정수를 주옥 같은 문장으로 만난다. 윤리적 문제는 물론 가족과 삶의 문제 등 세상을 올곧게 살아가기 위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강직한 선비는 어떻게 사유했을까. 그의 문장을 한 권으로 묶어 소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책은 문장 이론, 논설과 평론, 충성과 절의, 가족과 나에 관한 글 등으로 나뉘어 문집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고 있다. 내용면으로는 세계관, 학문적 방법론, 사리의 분별과 신념의 문제, 일상 사물들과 맺어야 할 합당한 관계 등 선비들이 취해야 할 몸가짐에 대해 밝혀 놓은 일종의 대백과 사전이다.
주자학 중 실천을 중시하던 양명학파의 꽃으로 불리던 강화학파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명미당은 불과 15세의 나이로 문과에 합격, 최연소 과거 합격자로 기록된다. 어려서부터 불의를 용납 않던 그는 26세에 충청우도 안렴사(암행어사)로 임명돼 탐관오리를 줄줄이 천하에 엮어 냈다. 고종은 학정을 일삼는 지방 관리들에게 “이건창과 같은 암행어사를 보낼 것이니 후회 없도록 하라”는 경고를 보낼 정도였다.
옮긴이 송희준(50)씨는 대구 지역 한학자들과 함께 ‘주덕회(周德會)’라는 윤독회를 만들어 15년째 자신의 관선서당(觀善書堂)에서 탐구해 오고 있다. 그는 “김택영, 황헌과 함께 구한말 3대 문장가로 통했던 그의 글은 시대를 고뇌하는 지식인상의 모범을 구현한다”며 “살아서 자기의 포부를 펼치지 못했고, 죽어서도 푸대접 받던 선생을 이 인터넷 시대에 모셔 놓으니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이 책은 21세기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동원한다. 단락마다 송씨의 논평을 실어 의미를 선명히 밝히며, 해상도 높은 관련 흑백 사진 60여점도 함께 수록해 두고 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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