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취임 100일도 안 돼 국민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심사를 모를 바는 아니나 담화 내용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가 의심스럽다. 송구스럽다는 말이 진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아 대통령과 주변, 정부와 여당이 아직도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때문이다.
우리는 협상 과정의 실수와 소홀에 대한 대통령의 솔직한 사과와 반성, 관련자 문책을 여러 번 촉구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절반의 반성에 머물렀지, 협상과정의 문제점은 일절 시인하지 않았다. 또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는 말로 협상 관계자들의 실무 책임을 흐렸다. 평소라면 최고지도자의 미덕일 수 있는 자세다. 그러나 지금처럼 문제가 터지고, 확인되고, 커졌을 때는 오히려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고, 경중을 따지지 않는 현실감각과 판단력의 문제만 드러낸 셈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을 위해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의 하나인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 타결은 필요했다. 여기까지는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고, 그 과정이 어쨌든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무적 허점까지 눈감아 줄 이유는 되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였나. 이 대통령은 담화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국제기준에 부합하고, 미국인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와 같다는 점을 문서로 보장 받았다고 밝혔다. 또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수입을 중단하는 주권적 조치도 명문화했다고 강조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광우병과 관련한 미국 쇠고기의 안전관리 기준이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을 충족한 만큼 지난 정부 때 이미 약속한 수입 재개를 늦출 명분이 없다, 월령 30개월 이하 쇠고기의 특정위험물질(SRM) 유통금지 기준을 미국과 같이 하고 월령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국내 수입업자들의 결의로 사실상 수입되지 않도록 했다,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동안 국민적 관심과 우려가 집중된 핵심 내용이다.
굳이 추가협의를 통해 미국의 양해를 얻을 필요 없이, 애초에 이런 내용을 분명히 정리했다면 국민 불안이 커지고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분분할 일이 없었다. 더욱이 30개월 이상 쇠고기 문제는 한국 정부의 설명과 방침에 대해 미 무역대표부(USTR)가 노골적 불만과 우려를 표한 데서 드러나듯, 아직 완전히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협상은 문제가 없었고, 정부와 최고지도자의 참뜻이 국민 마음에 닿지 못해서 빚어진 ‘소동’이란 말인가.
야당의 재협상 주장이 현실과 관행을 외면한 밀어붙이기 성격이 짙다는 점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현재의 ‘광우병 논란’에 오해와 과장이 많이 뒤섞인 것 또한 그렇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의 인식이 이렇게 안이해서는 국민 이해와 국회의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바라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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