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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鑒於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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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鑒於人)

입력
2008.05.2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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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12월 5일 영국의 남극대륙 탐험대가 탐험선 인듀어런스호의 닻을 올렸다. 그보다 전인 1913년 8월 3일 캐나다 탐험대도 북극지역을 탐험하기 위하여 탐험선 칼럭호를 출발시켰다. 그런데 항해 후 얼마 되지 않아 공교롭게도 두 배 모두 부빙(浮氷)에 갇혀 더 이상의 항해가 불가능하게 되었고, 배도 부빙의 압력에 의하여 난파되었다.

두 배에 탄 탐험대원들은 그때부터 영하 70도까지 내려가는 살인적인 추위와 눈보라, 끝없는 얼음벌판, 부족한 식량과 연료, 교신불능 등의 상황에 내몰려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은 극한상황에 처하였던 두 탐험대의 운명은 그들이 탐험하려고 하였던 남ㆍ북극만큼이나 극과 극으로 다르게 전개되었다.

리더십이 운명 가른 두 탐험대

북쪽의 칼럭호 대원들은 고립된 지 수개월 만에 11명이 죽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조난이 길어지자 대원들은 부족한 식량과 연료를 놓고 서로 싸우고 도둑질하는 일상을 되풀이하면서 자신의 욕심만 차리려다 결국 모두 자멸의 길을 걸었다.

반면 인듀어런스호에 타고 있던 탐험대원들은 조난기간이 무려 634일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은 채 대원 27명이 전원 구조되었다. 그들이 이러한 기적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칼럭호의 대원들과 달리 기나긴 조난기간에도 팀워크, 희생정신, 서로에 대한 격려, 배려심을 발휘한 결과였다.

같은 극한상황에 처했던 탐험대원들이 이와 같이 전혀 다른 행동양상을 보이며, 결과적으로 삶과 죽음이라는 너무나 다른 결말을 초래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그 원인을 리더십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 인듀어런스호에는 전 대원들이 진심으로 믿고 따를 수 있었던 어니스트 섀클튼이라는 탁월한 리더가 있었던 반면, 컬럭호에는 그러한 리더가 없었다.

섀클튼은 대원들에게 반드시 구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면서 ‘공동체’라는 소중한 덕목을 일깨우는 리더십을 발휘하였지만, 컬럭호의 리더는 그러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고 리더십의 차이의 결과는 실로 엄청났다.

요즈음 우리 대한민국호는 극단의 분열과 불신이라는 부빙에 갇혀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한민국호의 대원들은 이 위기를 헤쳐 나갈 리더십을 간절히 구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아직까지는 그러한 리더십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위기의 핵심에 ‘대원들이 믿고 따를 만한 리더십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출범한 지 100일이 안 된 정부의 리더십이 이렇게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대한 원인으로 ‘국민과의 소통의 부재’를 들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언급한 소통에서 일방통행의 느낌을 가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인가? 소통은 쌍방향의 것이지, 일방향의 것이 아니다.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은 국민의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 그런데 대통령이 언급한 소통에는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잘못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빠져 있다.

때 이른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

옛말에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이라고 했다.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에 얼굴을 비춰 보라는 말이니 표면에 보이는 것에 천착하지 말고-자신의 모습이든, 자신이 일구어 낸 그 동안의 성과이든-사람들에게 비추어 자신을 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리더십의 위기에 처한 이 대통령이 한 번 쯤 그 뜻을 헤아려 볼 만한 경구라고 생각된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의 CEO 출신으로서 성과 중심의 리더십에 익숙한 듯 하다. 실용의 철학도 그 바탕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기업을 운영하는 일과 나라를 이끌어 가는 원리는 다르다. 기업은 성과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되, 나라는 사람이 우선되어야 한다. 맹자도 민불환빈 민환불균(民不患貧 民患不均)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변환철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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