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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콩쿠르 우승 유영욱 내달 첫 국내 독주회/ "무대 서는 의미 잃어 큰 슬럼프 겪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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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콩쿠르 우승 유영욱 내달 첫 국내 독주회/ "무대 서는 의미 잃어 큰 슬럼프 겪었죠"

입력
2008.05.2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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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세 소년 유영욱은 ‘작곡 신동’으로 불렸다. 7세에 피아노를 배우면서 스스로 작곡을 하기 시작한 소년은 11세에 작곡발표회를 열어 유명세를 탔다. 1998년 줄리아드 음대에 다니던 21세 유영욱은 스페인 산탄데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미국과 유럽, 남미 등에서 130여회의 독주와 협연을 했으며 리스트 음반(낙소스)도 녹음했다.

다시 시간이 흘러 2007년 30세의 유영욱은 독일 본에서 열린 베토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그리고 다음달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국내 독주회가 열린다. 베토벤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 리스트 소나타 b단조 등을 연주한다.

두 번의 콩쿠르 우승 사이의 긴 시간들이 궁금했다. 유영욱은 “그 사이 큰 슬럼프를 겪었다”고 말했다. “성숙하기도 전에 기회가 왔던 게 문제였죠. 연주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무대에 서는 의미를 잃어버렸어요. 어차피 관객은 이해하지도 못할텐데 그냥 음반을 틀면 되지 왜 똑같은 연주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 뒷편의 사업적인 부분에서도 회의를 느꼈구요.”

무대에 대한 회의는 우울증으로 이어졌고, 연주자로서의 삶을 중단하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교육자로 길을 바꾸기 위해 맨해튼 음대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런데 뜻밖의 곳에서 돌파구가 나타났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음악의 의미와 연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다 보니 그 말들이 어느새 나를 향하더군요. 나의 모든 것을 주지 않으면서 관객들의 호응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았고, 실내악을 하면서 소통이 주는 긍정적 영향도 깨달았어요. 무대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다시 세상에 나가기 위해 늦은 나이에 도전한 베토벤 콩쿠르는 우승을 안겨줬다. 오랜 고통 끝에 얻은 소중한 기회였다. 음악이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 그는 “음악에서 인생을 배우고, 인생에서 다시 음악을 배우고 있다”면서 웃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주목을 받은 사람들은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어요. 음악과 자신을 동질화하지 말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이 일을 위해 가슴이 두근거리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이제 작곡은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릴 때는 뭘 몰랐기 때문에 자유로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남들의 시선이 부담이 됐다”면서 “이미 만들어진 작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피아노 연주 역시 창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공연 문의 (02)548-4480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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