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어버이날의 일이다. 결혼하고 해마다 어버이날이 되면 시골에 혼자 계시는 시어머니께 내려가곤 했다. 어버이날이 휴일이 아닌 관계로 그전 주말에 가서 꽃바구니와 선물을 드리고 근처에 사시는 작은댁에 찾아 뵙고 하는 걸로 자식된 도리를 조금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올해는 수술하고 퇴원한 친정엄마가 우리집에서 요양을 하고 계셔 남편 혼자 다녀왔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싱싱한 꽃바구니 배달에 생각이 미쳐 분홍빛 카네이션이 30여송이 꽂혀 있는 화사한 꽃바구니를 어머님댁에 배달해 드리도록 했다. 그리고 어머님댁에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어버이날인데 못 가봐 죄송해요.” “얘야, 내 걱정은 하지 말거라. 동네 사람들 모두 마을회관에 모여서 그날 하루종일 먹고 놀고 잔치하니까 괜찮다. 그나저나 사돈이나 잘해 드려라. 맛있는 것도 많이 해드리고, 알겠나.”
깜짝 놀라게 해드리기 위해 꽃배달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 날부터 어떤 모습으로 꽃을 받으실까 상상하느라 밥하다가, 빨래 개다가도 피식 웃곤 했다. 아침 드시고 바로 회관 간다고 하셨으니 회관에서 노시다가 “000씨 꽃배달 왔습니다”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나오셔서 화려한 꽃바구니를 받고 얼떨떨해 하시고, 주위 분들은 부러움의 박수를 치시겠지.
그럼 어머님은 부쳐드리는 용돈을 좀 떼어서 막걸리라도 한턱 쏘실 거야. 친구 분들이 아들, 며느리 잘 뒀다고 부러워하시면 어머님은 “하이고 야들은 쓸데 없는데 돈 쓰고 이런다냐. 난 이런 거 필요 없다는데 괜히 보내고 그래.허허”라고 하실지도 몰라.
그리고 어버이날 오후1시30분. “띵똥~ 000님께 보낸 꽃배달이 배달 완료되었습니다”하는 문자가 왔다. 난 “아싸~”하고 손뼉을 치곤 어머님께 전화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전화가 오지 않아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돌리니 늦게까지 안받으신다. 다음날 점심 무렵에야 전화연결이 되어 물으니 “꽃바구니 같은 건 받은 일 없다”고 하시는 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놀라서 꽃배달 서비스 콜센터에 항의를 하니 세상에, 다른동네 엉뚱한 사람에게 배달이 된 것이다. 어머님 사시는 동네가 아랫마을 윗마을로 나뉘어져 있는데 윗마을로 가서 집에 전화하니 안받아 마을회관에 가서 “000씨~!” 외치니까 어떤 할머니가 “내가 000요, 그 꽃 내주시오”라고 하더란다.
해서 배달원은 급한 마음에 확인도 안하고 그 할머니께 꽃바구니를 주고 이름도 대충 받아 온 것이었다. 나는 있는대로 성질이 나서 콜센타 직원에게 따졌다. “그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져서 이름을 잘못 들을 수도 있다고 쳐도 젊은 사람이 그런 거 확인도 안하고 달라는 대로 턱 하니 주고 오는 법이 어디 있느냐.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버이날이 매달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관리를 이런 식으로 하느냐” 등등. 전화를 끊고 나서도 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혼자 씩씩거리다 나중엔 눈물까지 났다.
꽃집주인이라는 분도 전화를 해서는 연신 “제 실수였다””며 “환불은 물론이고, 다시 꽃바구니를 만들어 보내면서 동네 분들이랑 함께 드시도록 떡을 해서 찾아 뵙고 사죄를 드리겠다”고 했다. 난 “다 필요 없다. 지금 그게 뭔 소용이냐”고 했지만 더 이상 따지고 소리 지르지는 않았다. 나도 한때 장사란 걸 해보아서 알지만 ‘일이 많다 보면 이런 일도 안 벌어지겠나’ 싶어서 결국엔 “영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앞으론 잘 확인하고 하세요”라고 말해 버렸다.
그날 저녁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얘야, 젊은 꽃집주인이 내 없어서 두 번이나 헛걸음하고 다시 왔더라. 커다란 노란 꽃이 가득한 꽃바구니하고 아직도 뜨끈뜨끈한 인절미하고 갖고 왔데. 배달원이 ‘실수해서 일이 이렇게 되었다’며 ‘용서를 해달라’고 손을 잡고 매달리는데 내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다음부터는 교육 분명히 해서 배달 보내시라’고는 했다. 니도 섭섭하겠지만 잊어버려라. 하루 늦게 왔지만 꽃은 주인 찾아 왔으니 말이다. 니 덕분에 양쪽 동네에 두 노인네가 꽃바구니 받고 좋구나, 허허….”
난 이 모든 일이 내 욕심 때문인 것 같아 맘이 좋지 않았다. 괜히 어머니와 동네 분들에게 잘난 며느리 소리 듣고 싶은 마음에 일을 벌여서 그런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어머님께 휴대폰하나 제대로 사 드리지 못해 연락도 안 됐던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사실 저번 주에 남편이 ‘어머니 드릴 것’이라며 휴대폰을 사왔는데 ‘촌스러운 구형모델’이라고 예쁜 것으로 바꾸어오라고 하는 바람에 진작에 어머니 휴대폰을 못 드리게 된 것도 나 때문이다. ‘그때 그 휴대폰이라도 갖다 드렸으면 바로 전화연결이 돼서 이런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텐데….’
퇴근한 남편에게 그 동안 있었던 얘기를 해주니 “그 꽃집이 안동 어디라고? 주인이 젊은 아주머니라면 음… 혹시 나랑 비슷한 나이 아냐? 히히…, 그럼 내 동창일수도 있겠다. 가서 커피한잔 마시면서 첫사랑인지 봐야겠다. 너무 맘 쓰지마.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거야.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콧노래까지 부르는 때문에 그만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사실 그 꽃집 아주머니도 그랬다. “여기 고향에 오시게 되면 저희 꽃집에 꼭 들러서 차 한잔 마시고 가세요. 제가 자스민차 한잔 제대로 대접해 드릴게요.”
다음에 시댁 갈 때 들러서 차도 마시고 꽃집의 아줌마가 정말로 예쁜지, 또 혹시 남편의 첫사랑인지도 알아봐야 겠다. 어머니 말씀대로 “하루 늦게 아니, 364일 빨리 도착한 어버이날 카네이션 덕분에 그 꽃집 아주머니와 새로운 인연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야말로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그제야 비로소 두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박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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