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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통령 대국민 담화/ 대통령 뒤에 숨은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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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통령 대국민 담화/ 대통령 뒤에 숨은 내각

입력
2008.05.2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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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 野대표 만나고 사과하는데 총대 메는 장관은 없어

이명박 정부에는 내각이 없다.

쇠고기 파동을 진화하기 위해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만나고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며 동분서주하고 있는데도 정작 현안을 처리해야 할 총리나 장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국회 청문회에 불려가 책임을 떠넘기는데 급급한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3월16일 워크숍에서 새로 임명된 장관들에게 “주저하거나 눈치보지 말고 소신 있게 일하라”고 독려했지만 소신은커녕 무대 아래에 숨어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원래 각료들이 그렇지만 그래도 과거 정부에서는 민심이 술렁일 때 기꺼이 총대를 메거나 버거운 과제를 떠안는 뚝심 있는 장관들이 있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불법파업으로 경제가 홍역을 앓고 있을 때 최병렬 노동부 장관은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무노동무임금과 총액임금제를 관철시켰다.

국민의 정부 때인 1999년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 알려져 문화계 인사 수백 명이 거리에서 삭발과 단식농성을 하고 민심이 악화했다. 그러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국회와 문화계 인사들을 무수히 만나 설득을 하면서도 ‘원칙’을 고수, 결국 사태를 진정시켰다.

임동원 통일부 장관은 2001년 평양에서 열린 8ㆍ15 통일대축전에서 남측 참가자들의 돌출발언으로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자 사퇴의 배수진을 치고 해명과 설득을 했다. 오인환 공보처 장관은 문민정부 5년간 정부의 실정에 따른 뭇매를 맞으면서도 언론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정부와 언론 간 갈등을 풀어내는데 앞장섰다.

반면 최근 한달 동안 쇠고기 파동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도 현 장관들은 감감 무소식이다. 이 대통령이 최근 “이번에 세게 훈련했는데 뭘 또 바꾸나”라며 경질 가능성을 일축한 것만 믿고있는 것 같다.

중고생까지 거리에 나와 촛불시위를 벌이는데도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은 별 말이 없고, 졸속 협상의 책임자인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해임건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기까지 주도적으로 변변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게다가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쓸데없는 참견으로 ‘소(牛)장관’이라는 조롱만 받았다. 이에 여권 내부에서는 책임총리제 도입을 주장하며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있지만 정작 한승수 총리는 자원외교에 전념한다며 쇠고기 파동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정권 초기에는 정부조직법 난항으로 장관을 임명하지 못하는 불임내각을 걱정했는데 지금은 자리만 채웠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낮은 사과 자세… 좁은 유감 범위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집권한 지 불과 87일 만이다. 이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쇠고기 파동에 대해 송구스럽고, 국정운영의 부족한 점은 자신의 탓이라고 했다. 유감 표명에 머물던 그간의 자성보다는 강도가 훨씬 셌다.

전날 밤까지 이 대통령과 참모들은 사과 수위를 놓고 토론을 거듭했고 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한 단계 더 높였다는 후문이다. "송구스럽다" "나의 탓"으로 압축되는 사과는 드라이브식 국정 운영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고, 여기에는 지금의 민심이반을 돌파하는 식으로 대처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낮은 자세로 사과했지만 그것으로 쇠고기로 인한 들끓는 민심이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사과의 방점이 국민과의 소통부족에 찍혀 있고 쇠고기 협상의 졸속, 부실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상황 인식의 부족이 느껴진다.

담화대로라면 협상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이후 쇠고기 파문의 확산 과정에서 정부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데 당혹스러웠다" "국민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는 언급이 그렇다.

이 대통령은 또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며 모든 책임을 혼자 떠 안고 가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사실상 정치권에서 요구한 인적 쇄신을 거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새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도 채 안됐으며, 청문회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면서 "지금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인적 쇄신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중과 달리 상황은 간단치 않다. 야당은 이미 정운천 농림수산부식품부 장관에 대해 해임건의안을 강행처리 할 태세다. 한나라당에서도 내각이나 청와대 수석들의 책임론을 제기할 정도이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수?쇠고기의 안전성 강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의 당위성을 역설했지만 크게 힘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금은 국민의 신뢰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다.

그래서 한미 쇠고기 협상의 잘못까지 인정하는 진정한 사과와 책임 소재 규명, 신뢰감 있는 안전대책 등과 함께 국민이 납득할 만한 국정 쇄신책이 제시됐어야 한미 FTA 비준의 당위성도 돋보였을 것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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