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 / 문학과지성
박상륭(68)이 <잡설품(雜設品)> 이라는 새 책을 냈다 해서 구해 봤다. 일감에, 읽지 않고도, ‘박상륭의 책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표지가 훌륭하다. 표지 그림은 연금술과 관련된 15세기의 도판이라고 나와있는데 ‘아담과 철학의 나무’라는 제목만 있을 뿐 작가는 알 수 없다. 자주 박상륭 작품의 배경이 되는 유리(주 문왕이 은의 폭군 주에 의해 유폐됐던 곳)처럼 황량한 사막 같은 땅에, 벌거벗은 한 남자가 열명길(저승길ㆍ <열명길> 은 박상륭의 중단편소설집이기도 하다)에 든 듯 누워 있다. 그런데 그 남자의 뿌리 부분에서 나무가 자라나 무성한 잎을 이고는 그와 한 몸이 되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육체와 정신의 연금술일까. 자칭 ‘잡설가’, 소설은 잡스럽고 경전은 중생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전과 소설의 사잇글’을 쓴다는 작가 박상륭의 초상 같기도 하다. 열명길> 잡설품(雜設品)>
그가 이민 갔던 캐나다에서 돌아오겠다고 잠시 귀국했을 때인 1998년에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법륜(法輪)을 굴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세계는 몸의 우주, 말씀의 우주, 마음의 우주로 이루어져 있다. 희랍신화의 우주가 인간과 짐승의 몸의 우주라면, 기독이 와서 편 우주는 말씀의 우주다. 석가모니는 마음의 우주를 열었다. 그러나 석가도 우주를 지배하는 먹이사슬의 고리를 끊지 못해 괴로워하며 자비나 보살행을 말한 거다. 그러나 이 박상륭은 그 고리를 끊었다… 책 좀 읽어보세요.”
“대한민국에서 박상륭의 책을 다 읽은 사람은 4명밖에 없다”는 말도 있지만, 다 안 읽어보더라도 알 수는 있는 것이다. 그의 글쓰기는 말과 글로써 우주에 닿으려는, 언어의 탑을 쌓는 행위다. 텍스트가 텍스트 그 자체로 무게를 갖는 희귀한 경우다. <잡설품> 은 <죽음의 한 연구> (1975)부터 시작해 <칠조어론(七祖語論)> (1994)을 거쳐 마침내 마무리된, 박상륭의 사유의 결실이라 한다. 다시 그의 <죽음의 한 연구> 읽기부터 도전해보는 것이다. 죽음의> 칠조어론(七祖語論)> 죽음의> 잡설품>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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