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재무부 국장과 사무관이 정부와 여당의 정책 사령탑으로 재회했다. 이런 옛 인연이 삐걱대던 당ㆍ정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거리다.
24일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으로 선출된 임태희 의원은 행시 24회로 금융과 예산분야를 두루 거친 정통 재무관료 출신이다. 관료출신 특유의 정책능력에 원만한 대인관계, 훤칠한 외모까지 갖춘 팔방미인으로 당 안팎에서 두루 신망이 깊다. 옛 민정당 대표를 지낸 권익현 전 의원으로 사위로, 재경부 과장 시절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텃밭인 판교(분당을)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재미있는 것은 향후 당정관계에서 그의 ‘카운터파트’가 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옛 인연이다. 1990년대 초반, 강 장관이 재무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임 의원은 국제금융국 총괄과(외환정책과) 사무관이었다. 수시로 보고하고 지시 받는 직속 상관과 부하 관계였던 것이다.
당시 ‘강 국장’은 ‘임 사무관’을 상당히 총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강 장관과 임 의장은 서로에 대해 상당히 깊은 신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옛 재무부는 상하관계가 아주 엄격했다”면서 “하늘 같은 국장과 말단 사무관이 장관과 정책위의장으로 다시 만난 것 자체가 묘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새 정부 출범이후 당정 관계는 불협화음의 연속이었고, 그 중심엔 강만수 장관과 전임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있었다. 서울대 동기에 옛 재무부 동료이고 행시기수(강만수 장관 8회-이한구 전 의장 7회)도 비슷했지만, 두 사람은 굽힐 줄 모르는 ‘까칠한’ 성격 탓에 추가경정(추경) 예산 편성 등을 두고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때문에 재정부 내에선 ‘임태희 체제’ 출범을 계기로 향후 당정관계의 모드가 갈등에서 화해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정부 한 관계자는 “강 장관과 임 의장의 오랜 인연과 친분 등을 감안할 때 어쨌든 지금까지 보다는 당정관계가 한결 개선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조건 낙관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옛 상하관계가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3선 의원에 여당 정책위의장이 됐다 해도, 강 장관의 뇌리 속엔 ‘임 사무관’의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다. 여당 입장에선 정부에 대해 늘 우위를 확보하려는 속성이 있는데, 예전 국장으로 깍듯하게 모시던 강 장관에 대해 임 의장이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 재정부 간부는 “당정은 가깝고도 먼 관계이고 때론 서로 얼굴 붉힐 일도 많다”면서 “오랜 인연을 가진 두 사람으로선 서로가 부담스러울 때가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 의장도 향후 당정관계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그는 “일시적으로 생긴 세계잉여금 4조9,000억원을 경기 흐름을 끌어 올리기 위한 재원으로 쓰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전임 이한구 의장처럼 추경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강 국장-임 사무관’에서 비롯된 수십 년 ‘인지상정’이라도, 냉엄한 당정관계의 틀을 바꾸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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