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과 미국 산 쇠고기 수입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사건이 매스컴을 타고 불거진 후 거의 매주 청계천 광장에서는 촛불집회 시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 신문의 기사를 믿어야 할지, 어느 방송의 보도가 정확한 것인지, 어느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인지, 정치권의 공방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 라고 자신감 있게 말 해주는 사람도 없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루머인지도 분간이 안 된다. 일상에서의 사람들끼리 큰 의미 없이 주고 받으며 이루어지는 작은 이야기들(Small Talks) 속에 의구심만 커져가고 불신만 확산되고 있다. 지난 번 칼럼에서 이번 사태를 두고 내용 없는 커뮤니케이션이 난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소통이 없는, 그리고 의사소통도 안 되는 그런 커뮤니케이션 양상이다.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또 다른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총체적인 저널리즘의 위기고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의 위기다. 위기 상황은 정치적 환경의 개선, 경제적 논리의 확산,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라는 삼각 파도 사이에서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전반적인 위기가 더 해결되기 힘든 이유는 정치, 경제, 기술의 영역의 새로운 가치들이 저널리즘의 유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저널리스트를 희생자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유가 신장됨에 따라 저널리스트들은 권력에 대한 감시견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보다는 오히려 제 4의 권력으로 군림하게 된다. 실제로 정치적 압력에 대항하던 언론에게 이제 정치 권력은 더 이상 무서운 대상이 아니다. 이는 일반대중을 저널리스트들로부터 유리시키며 언론이 생산하는 정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언론매체 역시 지구촌을 지배하는 경제적 논리를 피해갈 수 없다. 동종 혹은 이종 매체들 간의 경쟁의 심화, 기술의 발전에 따른 기존 매체와 뉴미디어 간의 결합과 멀티미디어 그룹으로의 확장, 그리고 이에 따른 매체 간 저널리스트들의 빈번한 이직 등은 또 다른 저널리즘의 위기의 배경이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 야기하는 문제는 더 심각하다. 기존의 매체에 더해 다양한 뉴미디어들은 곳곳에서 정보를 양산하고 있으며, 정보 전달의 속도도 비약적으로 빨라져 정보의 사실 확인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다른 정보가 휩쓸고 지나간다.
더욱이, 디지털 미디어는 정보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힘들어 지면서 일반인들이 저널리스트에게 가지고 있던 직업적인 신뢰나 동경 역시 같이 사라지고 있다.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할 저널리스트와 일반인 사이의 간극이 너무 좁아져 버렸다. 이번 광우병 관련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의 위기 상황은 그들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건 자체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사회적 위기를 동반하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위기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이러한 와중에도 일상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 매체들은 마치 스타 연예인을 만들어 내듯이 수 많은 저널리스트 중에서 극소수의 대중적 스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들 스타 저널리스트들이 저널리즘 영역의 확보와 저널리스트에 대한 신뢰 회복에 대한 알리바이가 될 수는 없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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