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 당국자는 21일 “현실적으로 공모제만으로는 민영화를 강력히 밀어붙일 추진력 있는 인사를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막바지 단계에 있는 산업은행 후임 총재 인선을 다른 금융 공기업과 달리 공모제로 추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이번 만큼은 제대로 된 공모제를 시행하겠다”고 공언해온 정부가 스스로 공모제의 실효성에 물음표를 달고 있는 것이다.
실제 과거 공모제와 달라진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정부 측도 “그저 좀 더 투명하게 공모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일 뿐, 공모 시스템 자체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이렇다 보니, 과거처럼 ‘공모(公募)’가 ‘공모(共謀)’로 전락할 소지는 여전하다. 앞서 공모를 실시한 주택금융공사와 KOTRA는 사장추천위원회가 3배수 최종 후보를 선정했지만,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재공모에 들어갔다.
공모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여전히 공공기관장 선임의 ‘키’는 청와대가 쥐고 있고,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객관적인 사유를 공개하지 않는 한 ‘밀실 공모’ 의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고위 인사는 “과거의 관행에서 한 치도 나아진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며 “굳이 이럴 바에야 형식적인 공모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선진국처럼 헤드헌터사 등을 통해 적임자를 물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인물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굳이 불필요한 자격 요건이 제시되는 것도 문제다. “관료는 된다, 안 된다” “현직 기관장도 참여할 수 있다, 아니다” 등등 부처마다, 당국자마다 말도 엇갈린다. 모 금융 공기업의 고위 인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최적임자를 찾겠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인위적인 잣대를 들이대면서 역차별 등 편파성 논란만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종후보 선정 심의를 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중립성도 도마 위에 오르내린다. 정부는 최근 9명의 위원 중 신규 임명된 3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6명에 대해 일괄 사표를 받았다. 결국 새 정부의 의중을 반영한 인물들로 교체하겠다는 것인데, 자칫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을 소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이번 공모제의 성패도 정부의 양심과 의지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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