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술렁이고 있다. 정연주 사장 사퇴를 둘러싼 내홍이 증폭되는 가운데, 21일 감사원의 특별감사 실시가 결정됐다.
감사원의 특별감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사퇴 압박이 될 전망이다. 여권의 사퇴압력은 방송의 공영성 수호라는 명분으로 막아낼 수 있지만 객관적 경영 평가 앞에서 그런 명분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비록 보수단체에 의해 청구된 것이기는 하지만 정 사장 취임 후 1,500억원에 이른 KBS의 누적적자는 특별감사의 충분한 근거가 된다. KBS의 방만한 실태가 감사에서 드러날 경우, 정권교체 때마다 공영방송 수장을 갈아서는 안 된다는 여론도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노동조합의 사퇴압력은 이미 극에 달했다. 노조는 지난달 22일부터 16일까지 조합원들을 상대로 ‘정연주 사장 퇴진과 낙하산 사장 반대’ 서명을 받았다. 참여한 노조원은 총 3,162명(본사 2,205, 지역 957명)으로 전체의 70%를 웃돈다.
노조 측은 “정 사장은 공영방송의 운명을 담보로 한 장난을 계속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를 진보 진영의 마지막 보루로 미화하는 위선을 부려서도 안 된다”며 퇴진을 강력히 요구했다.
정 사장의 버팀목이던 이사회의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2006년 정 사장의 연임을 결정하는 이사회 투표에서 정 사장은 11표 가운데 6표를 얻었다. 하지만 정 사장과 함께 한겨레신문에 근무했던 조상기 전 이사가 4월 총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위해 사퇴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2일 그 자리에 방석호 홍익대 교수를 임명했다. 방 교수는 2006년 9월 KBS 이사로 임명됐으나, 두 달 뒤 정연주 사장 재선임에 항의하며 사퇴했던 인물이다.
정 사장에 대해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진 신태섭 이사(동의대 교수ㆍ민언련 공동대표)도 사퇴압박을 받고 있다. 정 사장 조기퇴진에 반대하는 다른 이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설도 나돈다. 이런 가운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최근 두 차례 김금수 KBS 이사장을 만나 정 사장의 사퇴권고 결의안을 이사회 명의로 발표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공개된 데 대해 책임을 지고 김 이사장도 21일 사의를 밝혔다.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노사정위원장 등을 역임한 김 이사장은 정 사장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 왔다. 보궐 이사에 대한 추천권을 방통위가 갖고 있기 때문에, 이사회가 정 사장의 보루에서 비토 기관으로 돌변할 수 있다.
그러나 정 사장에 대한 전방위적 사퇴 압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단체들은 정 사장에 대한 사퇴 압박을 정부기관을 총동원한 방송장악 기도로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K씨가 이미 차기 KBS 사장으로 거론되는 것이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역시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방송 관련 정책을 진두지휘하며 월권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역효과를 낳고 있다. 정 사장에 대한 공격이 노골화될수록 정 사장이 KBS 사장직을 지켜내야 하는 명분도 커지는 셈이다. 정 사장 진퇴를 둘러싼 KBS 안팎의 갈등은 임계점을 향해 치닫는 분위기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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