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육의전 터에 건축주가 지하박물관을 조성키로 해 문화재보전과 도심개발의 조화를 이루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위원회는 최근 조선의 대표적 상가였던 육의전 건물 터로 확인된 탑골공원 옆 서울 종로3가 40일대 208평에 지하3층, 지상8층 규모의 ‘육의전빌딩’을 건축하는 안을 승인했다. 건축주인 이영길(64) ㈜영동시티개발 대표가 제출한 건축계획안에 따르면 신축되는 건물의 지하 1층 전체를 박물관으로 조성, 육의전의 유구를 그대로 보존하게 된다.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이 사회교육관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신라시대 유적을 강화유리로 덮어 보존하고 그 위에 미술관을 지은 적이 있으나 도심에서 유적 현장을 보존, 전시하면서 건물을 짓는 것은 처음이다. 이 같은 유적 보존방식은 향후 종로 일대의 도심 재개발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대표와 유적보존 방안을 마련한 문화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21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간의 경위를 밝혔다. 이 대표는 당초 이곳에 지하3층 지상9층 규모의 임대용 건물을 짓기 위해 2001년부터 7년간 약 300억원을 들여 땅을 매입했다.
그런데 지난 1월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결과를 본 문화재위원회는 육의전 유적을 현장 보존하라는 결정을 내렸고, 이 대표는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했다. 문화재청 직원에게 하소연했더니 “땅을 잘못 사셨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대표는 사업을 포기할까 망설이다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게 된 황 소장과 해결방안을 상의한 결과 10억여원의 사비를 들여 지하 1층 전부를 현장박물관으로 만들기로 결정했고, 문화재위원회에 건축계획안을 제출해 이 달 초에 승인을 받게 됐다.
계획안에 따르면 지하 1층의 160평 전체가 유적 보전 및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2m20㎝ 지점에서 노출되기 시작한 건물터를 비롯한 유적은 그대로 떠서 경화처리 등을 한 다음, 지하 3m 지점까지 하강시켜 보존하고, 그 위에 투명한 강화유리 보호막을 덮어 관람객들이 볼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곳에서 출토된 유물 및 토층 단면과 피맛골의 역사, 한양 지도 등 서울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자료도 전시한다.
이 대표는 추가발굴을 거쳐 1년6개월쯤 후에 건물이 완공되면 박물관 운영을 위해 전문직 학예사까지 고용하고, 서울시에 제2종 박물관으로 등록 신청도 하겠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최근 당진의 고려시대 고분 훼손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개발이익과 문화재보전이 충돌하고 있는데 이번 사례는 민간인이 자비를 들여 전시관을 만들어 유적을 보존한다는 점에서 문화재도 보존하고 개발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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