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등 수백억원 대의 재산을 가진 서울 강남의 한 중년 재력가가 납치된 뒤 80여일 동안 감금생활을 하면서 110억원을 강취 당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21일 부동산 임대사업자인 A(53)씨를 납치ㆍ감금하고 A씨의 예금 등 총 110억원을 가로챈 혐의(납치 강도)로 A씨의 대학 동창인 이모(53)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달아난 주범 김모(50ㆍ전과 17범)씨 등 일당 7, 8명을 쫓고 있다.
납치 과정
경찰 조사결과, 김씨 등 일당들은 A씨의 대학 동창인 이씨를 이용, A씨의 평소 생활방식과 동선을 파악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지난해 10월께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A씨에게 접근, A씨가 살고 있는 강남의 한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서 5개월간 함께 생활하며 범행 시기를 엿봤다. A씨는 대인기피증이 우려될 정도로 낯가림이 심했으나, 이씨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하자 함께 살기로 했다.
김씨와 이씨 등이 납치를 실행에 옮긴 것은 지난 3월 1일 오후. 이씨는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식당으로 A씨를 유인, 김씨 등 일당 2명과 합석해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 “술 한잔 더 하자”며 김씨의 벤츠 승용차를 타고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클럽으로 갔다.
이씨는 클럽으로 가던 도중이던 오후 9시 30분께 “잠깐 음료수를 사겠다”며 용산구 한남동 길가에 차를 세웠고, 이씨가 차에서 내려 사라진 사이 김씨 등 일당 2명이 A씨를 납치해 달아났다.
감금ㆍ귀가
주범 김씨 등은 A씨를 납치한 뒤 2개월이 넘도록 전국 각지로 장소를 옮겨 다니며 A씨를 감금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장소를 이동할 때는 눈을 가려 어디로 옮겨 다녔는지는 모르지만, 충남 천안 쪽으로 한 번 간 것 같다”고 진술했다.
김씨 등은 A씨를 납치ㆍ감금한 기간 중 은행 등에서 인출한 A씨의 예금 30억원, A씨 소유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은 78억원 등 모두 110억원을 강취했다. 김씨는 지난달 24일 제2금융권 은행에서 A씨로 신분을 가장해 78억원을 A씨의 법인 계좌로 대출받아 다시 자신의 계좌로 이체, 현금을 인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A씨 여동생의 신고로 납치 사실을 인지한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 오자 16일께부터 A씨에게 마약으로 추정되는 약물을 강제로 투여한 뒤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 너도 마약사범으로 처벌될 것”이라고 협박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20일 새벽 강남구 A씨 집 인근에서 A씨를 풀어 줬다.
경찰 수사
경찰은 지난 12일 A씨의 여동생으로부터 “처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오빠가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데, 혹시 납치라도 된 것 아니냐”는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A씨의 금융거래 내역을 확인한 결과, 건물 등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받은 사실을 확인, A씨가 납치된 것으로 보고 관련자 추적에 나섰다.
20일 경찰에 자수한 A씨 친구 이씨는 “A씨를 그 자리(주범 김씨 등과의 식사 및 술 자리)에 데리고만 갔을 뿐, 납치 및 감금을 공모한 적이 없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경찰은 그러나 이씨의 계좌에 10억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나머지 일당 7,8명의 정확한 신원 및 행방을 추궁하고 있다.
그러나 주범 김씨는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을 눈치 채고 15일 중순 필리핀으로 출국했다. 경찰은 또 A씨의 BMW 승용차를 비롯, 14억원을 회수하는 한편 나머지 96억여원의 사용처와 소재를 추적하고 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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