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자는 계속해서 새로운 ‘꺼리’를 꺼내 놔야 하는데 그날 따라 산뜻한 건 없고, 큰 일 났다 싶었다. 게다가 데스크(김성우 주간한국 부장)는 뭐 좀 재미있는 거 없느냐고 인상을 쓰고 있고, 아이디어는 안 나오고, 죽을 지경이었다. 김성우 선배는 평소 잘 웃지도 않는데다가 기자들이 아이디어랍시고 들이대면 “에이!”하고 재미 없어 하니까 김이 샐 때가 많아서 조심스럽다. 그래서 미리 얘기 안하고 그냥 일을 저지르기로 작정을 했다.
이런저런 책을 들여다보다가 수주 변영로 선생이 쓰신 “명정 40년”이라는 책을 다시 읽는 순간 내 머리에서 별이 반짝하고 빛나는 걸 느꼈다. “그래, 이거다. 이거 한번 해보자.” 여기서 “명정”이란 말의 뜻풀이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국어사전에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만취한 상태”라고 되어 있다. 요즘 말로 쉽게 풀면 술로 맛이 간 상태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변 선생이 쓰신 글의 제목은 “백주에 소를 타고”였다. 그 내용을 조금만 소개하면 이렇다.
“혜화동 우거에서 지낼 때였다. 어느 하룻날 바커스의 후예들인지 유령의 직손들인지는 몰라도 주도의 명인들인 공초(오상순), 성재(이관구), 횡보(염상섭) 3주선이 내방하였다.(중략)”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고 우리나라 문화계의 거목들이며, 우리 문화지도에 큰 획을 그어놓은 분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 분들은 워낙 술을 사랑해서 술과 얽힌 일화들이 아주 많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수주 변영로 선생이 앞장서시곤 했는데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돈은 없고 목은 컬컬하고, 또 술이라면 짊어지고는 못 가도 뱃속에는 넣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주선들이 4명이나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아아, 이를 어찌 하랴?
아마도 해결사는 항상 변 선생이었던 모양이다. 동아일보에 사람을 보내서, 급한데 쓸 데가 있어서 그러는데 원고료를 미리 달라고 했다. 1930년대에 50원이니까, 지금(2008년) 돈으로는 100만원 안팎이 되지 않나 싶다. 그 돈으로 소주 한말을 사고, 삶은 쇠고기를 큰 냄비에다 듬뿍 담아서 4명이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 뒷산으로 올라갔다. 소주 한말이면 요새 마시는 작은 병으로 약 50병은 되지 않을까. 어마어마한 주량들이다. 변 선생이 지금 살아 계신다면 조그마한 소주병을 보곤 홱! 돌아앉았을 것이다. 성균관 뒷산은 지금도 인적이 드물지만 그때는 삼청공원 자락이었고, 성북동 너머로 일부 농사일하는 사람들 외에는 아예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이 네 분의 주선들은 주거니 받거니 실컷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땅히 비를 피할 곳이 없어서 고스란히 비를 맞아 옷이 몽땅 젖었다. 그때 누군가가 “이왕 다 젖었는데 옷을 아주 벗자”고 제안을 했다. 이렇게 해서 네 분의 영웅호걸들께서는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미리 약속을 한 것이 아니라 졸지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는 근처에 매어 놓은 황소를 타고 유유히 아랫동네로 내려왔다.
나는 이런 기개가 항상 부러웠다. 어째서 요새는 그런 멋쟁이들이 없나? 홀랑 벗고 소를 타는거는 안 되겠지만 삶에 여유를 부리는 것은 호사가 아닐듯하다. “그까이꺼, 나라고 못 할소냐.” 한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른바 변영로 선생 흉내 내기에 돌입을 하게 된다. 계획을 세우자. 그냥 덮어 놓고 가면 안되니까 연예인들을 몇 사람 초대해야 한다. 더구나 시대가 30년대가 아니라 60년대라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어쨌든 소를 타고 시내까지는 내려오지 못 하더라도 소에 올라탄 사진만 찍어도 “주간한국”에 실릴 수 있는 ‘꺼리’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계획은 세웠는데 문제가 많다. 연예인들 누구를 초청할 것인가, 비가 와야 할텐데, 그리고 때가 때이니만큼 아무데서나 홀랑 벗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런저런 걱정이 태산이다. 에라 집어 치우자, 무슨 다른 기사가 있겠지 하고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늘 상 이야기하지만, 나는 호기심 천국이다. 게다가 오기도 10단은 된다. 하자! 하는 거다.
연예인은 내가 술 마시자고 해서 거절하지 않을 사람으로, 가수 최희준, 위키리, 배우로는 신성일, 남궁원, 윤양하, 작곡가로 이봉조, 김강섭, 나규호, 작사가로 전우, 하중희, 정두수 등등 비교적 두주불사 인물들을 골랐다. 하지만 평일 날 한가롭게 나를 따라서 술 마시러 유원지에 갈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하는 수 없이 이봉조, 나규호, 전우, 하중희, 그리고 유명한 팔방미인 가수 매니저인 이한복과 이상기, 방송 PD인 도상보, 후배 한명에다 나까지 아홉 명이 정릉에 갔다. 그 당시 정릉은 정말로 조용하고 깨끗했다. 엄격히 말하면 정릉이 아니라, 건너편에 있는 정릉 유원지로 갔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느라고 위로㎎?올라가니까 아닌게 아니라 조용한 곳이 있었다. 술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도대체 옷을 벗을 기회도 없고 더구나 소는 눈을 씻고 봐도 한 마리도 없다. 이거 큰 낭패가 아닌가.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간 다음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어쩌구 저쩌구---” 그래서 멋있게 변영로 선생 흉내 한번 내보자고 제안했다. 전원 찬성이다. 술이 들어갔는데 반대할리가 없지만. 이 사람들은 한 체격 하는 입장이라 벗어 놓으니까 볼만했다, 정말 웃겼다. 하지만 팬티는 입었다. 문제는 소는커녕, 말도 없고, 자전거도 없다. 아마 강아지는 두어 마리 있었던 것 같다. 정릉 유원지에 무슨 소가 있겠는가? 수락산이나 우이동, 창동이나, 안양 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장소 선택 잘못이다. 물론 비도 안 오고. 완전히 기획 실패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신문사에서 이런거 하라고 돈을 대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엄청나게 큰 배를 내 밀고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는 연예계 멋쟁이들을 사진에 닮을 수가 있었던 것은 특이한 기쁨이었다. 이날 터득한 교훈 한가지--멋과 낭만이란 것도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아, 옛날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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