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났을 때 팔이 아플 정도로 열렬히 박수를 치게 될 때가 있다. 16일부터 1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아이슬란드 베스투르포트 극단의 <카프카의 변신> 을 관람하고 그랬다. 근대의 황혼과 현대의 여명 사이에서 앞으로 닥쳐올 산업사회의 인간 소외와 전체주의 아래 관료사회의 악몽을 무섭게 예언했던 카프카의 <변신> 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변신> 카프카의>
소설 <변신> 의 문자언어 안에서 이미 풍부해진 독자 개개인의 개별적인 상상을 극장 안 공동의 경험으로 끌어내기 위해 보편적인 상상의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출가 기슬리 외른 가다르손은 공동연출가 데이비드 파와 작업한 각색본으로 공간과 몸, 원작의 행간을 읽어내는 정확한 해석력으로 이를 해냈다. 변신>
게다가 체조선수 출신 배우이기도 한 그에겐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 역을 해낼 수 있는 땀으로 정련한 몸이 있었다. 단련된 신체로 꽁지에 실을 매달고 흔들리는 거미처럼 몸의 균형추를 흔들면서 벌레의 공간지각 패턴을 종횡무진 표현해낸다.
2층 집의 단면이 들어앉은 무대는 가족들이 반복적인 일상을 영위하는 1층, 실내 암벽 등반용 손잡이에 의지해 천정과 벽을 옮겨 다니는 2층 그레고르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각의 착각을 활용해 천정에 매달린 벌레의 시선으로 방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무대디자인은 관객에게 익숙한 일상공간을 낯설게 바라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혐오와 분노의 세례 속에서 가장 고독한 자로 물러나는 순간 오직 단 한번 아릿한 현기증 속에서 직립한다. 이 ‘직립’에 담긴 ‘인간성’에 대한 질문이 전율을 일으킨다.
벌레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가족들이 노동의 피로에 갇히는 것을 연민하는 그레고르와, 이기심과 폭력의 극단으로 ‘변태’해가는 가족들의 대비가 차근차근 쌓여져 강력한 의미망을 구축한다. 그 흔한 스모크 아이라인 한 줄 긋지 않고도 찢어진 회색 양복만으로 벌레를 표현해낸 정면 돌파의 해석력이 놀랍다.
‘유용성’의 제일 원칙 속에서 버림받고 ‘벌레’로 호명되어 지워져 가는 존재 그레고르, 그는 성화 속 예수처럼 붉은 커튼을 감고 인류의 죄를 대신해 추락한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일상과 휴식을 영위하는 가족 신화가 지속된다.
30대의 젊은 예술가가 열어젖힌 우리 삶의 진상, 그리고 텍스트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소양은 어디에서 왔을까? 비옥한 인문학적 토양이 부럽다. 주말(24,25일)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이 극단의 다른 작품 <보이첵> 이 관객을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보이첵>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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