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주권 확보는 당연한 조치이다. 검역주권은 최소한의 권리이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100% 안전하다고 할 보증수표는 아니다. 20일 한ㆍ미 양국 정부가 우리의 검역주권을 재확인하기는 했지만,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들과 국민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불신에는 미측의 책임도 크다. 2006년10월 수입 재개 이후 현행 수입위생조건에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로 수입이 금지된 등뼈를 보내오는 등 번번이 한ㆍ미 합의를 어겨 국내 소비자의 믿음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미측도 비판 여론 수습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미국산 쇠고기를 믿고 사먹을 수 있도록 신뢰를 쌓는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한미 양국 정부와 업계가 수입위생조건을 보완할 자구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의 중요한 쇠고기 수출시장이기 때문에 미국은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라도 쇠고기 안전성을 확인시켜줄 의무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투자정책실장은 “미측이 마케팅 차원에서라도 우리 소비자단체들이 미국산 소 사육과 도축 등의 작업장을 점검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을 주문했다. 미국 현지의 도축장에서 광우병 위험소와 같이 식용에 부적합한 소를 확실히 가려내고 검사를 실시하는지, 도축소의 월령을 제대로 구별하는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을 확실히 제거하고 있는지 등 한국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을 풀어줄 의무가 미 측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 수출작업장에 대한 우리 정부의 현지 점검을 미 당국의 통제 바깥에서 이뤄지도록 해줄 것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무작위로 작업장을 선택해 점검할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요식행위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양국 합의 사항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우리 정부가 요구해온 이력추적제와 나이 표시, 도축시 검사 샘플 확대 등을 위한 미측의 투자도 절실하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는 “사전에 광우병 위험 소가 수입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최선”이라며 “미측도 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쇠고기를 팔려 한다면, 우리 국민과 전문가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안전장치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검역과 원산지표시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수입쇠고기의 현물 개봉검사 비율을 6개월간 현행 1%에서 3% 수준으로 올리는 등 수입검역을 강화한다는 계획이지만, 전수 검사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상 위험물질을 100% 걸러낸다고 보장하기는 어렵다. 양 교수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한 이 정도의 표본과 한시적인 검역 강화로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만에 하나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 단계에서 국내산으로 둔갑 판매될 우려도 불신을 키우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전국한우협회는 “한우만 한우로 팔릴 수 있도록 유통 단속을 강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내달부터 쇠고기 원산지표시 대상 음식점을 현재 300㎡이상 규모에서 100㎡이상으로 확대하고 특별단속을 실시하기로 했지만, 전체 57만여개 음식점 가운데 55만곳의 소규모 영세음식점은 사각지대로 남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수입위생조건의 쟁점 조항을 개정하기 위해 ‘재협상은 없다’는 경직된 태도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광우병 논란을 잠재울 근본적인 대책은 수입위생조건의 뇌관 제거에 있고 미국 역시 국내에서 일고있는 거센 비판 여론이 미국의 경제적 실익에도 반한다는 논리가 충분히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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