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교잡 배아가 영국에서 법적으로 허용될 것으로 보여 인간 존엄성 훼손과 윤리 문제 등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하원은 19일 ‘인간 배아 및 수정(受精) 법(일명 배아법)’ 개정안 중 인간-동물 교잡 배아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을 336 대 176으로 부결했다.
이에 따라 상원 가결 등을 거쳐 2009년 초 시행될 개정안은 인간-동물 교잡 배아를 치료ㆍ연구 목적에 한해 허용하고 배아를 생성 14일 이내에 폐기 처분하는 내용을 담을 수 있게 됐다. 알츠하이머, 파킨슨 같은 인간의 유전 질환 치료와 연구를 목적으로 인간-동물 교잡 배아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인간-동물 교잡 배아가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할 것”이라며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배아법 개정안이 영국 의회에 상정된 것은 2006년 말 킹스칼리지와 뉴캐슬대학이 유전질환 연구에 인간 배아가 필요하지만 여성 난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안으로 인간-동물 교잡 배아의 허용을 당국에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국이 요청을 승인하자 뉴캐슬대 연구팀은 지난달 인간 DNA를 소의 난자에 삽입해 만들어진 배아 32개를 3일간 생존시킨 후 폐기 처분했으며 이를 전후해 종교계 등이 반발하자 영국 정부는 배아법을 개정, 이 문제에 관한 규정을 만들기로 하고 여론을 수렴해왔다. 1990년대에 제정된 영국의 배아법에서는 인간-동물 교잡 배아에 관한 규정이 명확치 않다.
반대론자들은 배아법이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갖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의 에드워드 리 의원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무는 이 같은 배아 연구를 어느 선진국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지뢰밭에서 어린이가 뛰어 놀도록 만들었다”고 부작용을 우려했다. 앞서 3월 케이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은 “유전자 조작으로 프랑켄슈타인을 만들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인간-동물 교잡 배아는 영국에서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국 정부가 최근 공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국민의 61%가 치료 목적으로 인간-동물 교잡 배아를 허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대 의견은 25%였다. AP통신은 “대다수 영국인이 인간-동물 교잡 배아가 불치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영국의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2003년 인간-동물 교잡 배아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세계 최초로 인간-동물 교잡 배아를 만들었으나 다른 나라는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법적 근거를 만들지 않거나 금지해왔다. 인간-동물 교잡 배아란 암소, 토끼 같은 동물의 난소에서 난자를 채취해 유전 암호와 핵을 제거한 뒤 인간의 DNA를 주입해 만든 배아다. AP통신은 영국의 배아법 개정안 가결이 유럽 각국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