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인가 했는데, 벌써 여름이 된 듯하다. 5월인가 했는데, 벌써 하순이다. 새삼스레 5월 달력을 보니, 과연 ‘가정의 달’이라 할 만한다. 자식에게 못 해준 게 미안해 왕창 챙겨준 어린이날, 못한 효도 꽃과 선물과 전화로 때운 어버이날, 어린 고아들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입양의날, 어버이와 동격인 스승을 대접하는 날, 자식들이 어른이 되어 부모 가슴을 뿌듯하게 하는 성년의날, 그리고 심지어 부부의날도 있다.
누가 작정하고 이 모든 날들을 5월에 몰아넣은 것 같다. 아무래도 기후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은 날씨 따라 산다고, 1년 중 가장 다정한 달에, 다정한 관계를 뽐낼 날들을 몽땅 집어넣은 것이다. 사실 부부의날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오다가, 이번에 달력 보고 알았다. 당연히 부부의날이라고 아내에게 선물은 고사하고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넨 적도 없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평생 해로하는 식의 부부의날 같은 걸 다 만들었나 우스우면서도-하긴 워낙 갈라서는 부부들이 많다보니 그런 흐름을 막아보겠다고 만든 날인지도 모르겠다-뭐라도 해주어야지 않을까, 부담감이 막 생긴다. 진심으로 고맙다. 못난 사람이랑 결혼해주고, 아직까지 살아줘서. 하지만 짜증이 솟구치는 여름이 오면 우린 또 자주 싸우겠지.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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