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고두심의 색깔을 모르는 대중도 있을까. 22년간 묵혀온 <전원일기> 로 가장 한국적인 어머니와 며느리 상에 도달한 그의 이미지는 거의 절대적인 수준에 있다. 그런 고두심(57)이 19일 첫 방송한 MBC 일일 저녁드라마 <춘자네 경사났네> 에서 도깨비 화장을 하고 붉은색 롱드레스를 입은 시골 가라오케 마담으로 등장한다. 춘자네> 전원일기>
촬영을 위해 경남 통영을 찾았던 고두심은 요란한 분장으로 뒤덮인 모습을 본 한 할아버지로부터 “이게 무슨 고두심이냐. 고두심이면 몸뻬를 입어야지”라는 호통을 듣기도 했단다. 첫 방송을 며칠 앞두고 서울 평창동 자택 근처에서 만난 고두심은 또 다른 고두심을 연기하는 설렘으로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작가와 감독 모두 좋은 분들이고 인연이 있어 캐스팅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죠. 그런데 웬걸, 좀 늦게 나온 대본을 보니까 이런 마담 역할이었던 거에요. 무슨 특집도 아니고 일일극 캐릭터가 이 모양이니. 하하. 그땐 발 빼기도 너무 늦었고. 에라 모르겠다.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화려한 역할을 해보잔 마음에 응했죠.”
<춘자네 경사났네> 는 MBC가 일일극의 시간까지 바꿔가며 그동안 부진했던 시청률 회복을 위해 야심 차게 내놓은 작품이다. 고두심은 주인공 서지혜(연분홍 역)의 엄마인 가라오케 ‘밤에 피는 장미’의 마담 황춘자를 맡는다. 코믹할 뿐 아니라 김병세(달삼 역)와의 로맨스도 연기한다. 춘자네>
“아유, 지금도 시청률 신경 쓰죠. 물론 연연하진 않지만요. 드라마는 가수와 달리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협력을 잘해야죠. 이번 역처럼 파격적인 캐릭터는 처음이에요. 특집극 <임진강> 에서 작부역을 한 적이 있지만 코믹하면서 과장된 연기를 하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임진강>
그가 가진 ‘국민 어머니’의 이미지는 사실 배우 입장에선 버거운 면이 있다. ‘안전빵’으로 캐스팅하려는 제작진은 굳어진 고두심의 이미지에 맞는 캐릭터가 나오면 1순위로 그를 잡으려 했을 정도이다.
“<전원일기> 를 처음 시작할 때가 서른 살이었고 끝났을 때 쉰둘이었으니까 거의 내 인생을 여기에 다 묻었다고 봐야죠. 한국의 대표 며느리라는 이미지. 근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 이미지 싫어해요. 어른에 순종하는 캐릭터인데 좋겠어요. 드라마나 개인인생에서나 어머니라는 역할만큼 어려운 게 없어요. 처음엔 이런 이미지가 힘들었는데, 어차피 그냥 둬도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인생인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더라고요.” 전원일기>
1974년 드라마 <갈대> 부터 따지면 그의 연기인생은 35년에 이른다. “제 연기인생의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90년에 장수봉 감독님과 함께 한 <춤추는 가얏고> 이죠. 예인의 일생을 연기한 이런 작품은 배우가 일생에 한 번 잡을까 말까 한 기회이니까요. 장 감독님과의 인연은 <마당 깊은 집> <아들과 딸> 등으로 이어졌죠.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89년의 <사랑의 굴레> 때였어요. ‘잘났어 정말~’ 이라는 유일한 유행어가 나온 작품이지만 신경쇠약의 여성을 연기하느라 스스로 짜증도 많이 나고 쉽지 않았어요.” 사랑의> 아들과> 마당> 춤추는> 갈대>
이미 중견을 넘어선 배우로 살아가는 그에게 연기란 무엇일까. 아직도 연기에 대한 아쉬움도 남아있을까. “저에게 연기는 소통이에요. 사람과의 대화, 삶의 숨구멍과도 같은 것이죠. 아쉬움이 있다면, 처녀시절부터 엄마역할을 많이 해 풋풋한 멜로 연기를 못해봤다는 정도예요. 이제 가끔 인생의 석양이 두렵기도 하지만 언젠가 다가올 노년의 로맨스 연기를 기대하면서 살아요.”
자기관리를 위해 매일 2시간씩 산을 타고 108배를 한다는 그는 후배들에게 연기자의 길을 만만히 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배우라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지만 사실 아픔도 커요. 행동반경도 작고, 사생활도 없고. 하지만 이왕 내가 뛰어든 일이니 다 헤쳐나간단 각오로 덤벼야죠. 인생의 마지막에 어떤 향기로 남을지를 생각하며 연기하기 바래요. 그리고 얼굴 좀 그만 고치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 예쁜 배우만 있으면 어떡해요. 서로 다른 칼라도 보여야 하는데요.”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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