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엉뚱한 질문 하나. 한때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 왜 멸종했을까?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은 1980년대에 제기된 ‘운석 충돌설’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지름 10㎞에 이르는 거대한 운석이 빠른 속도로 지구와 충돌, 그 충격으로 발생한 엄청난 양의 수증기와 먼지가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곧 기온이 떨어지고 빛이 없어져 광합성을 못하게 된 대부분의 식물이 죽었다. 그러자 먼저 식물을 먹고 사는 초식공룡이, 그 다음으로 초식공룡을 먹이로 삼는 육식공룡이 차례로 자취를 감추게 됐다는 설명이다.
즉 공룡이 사라진 표면적 이유는 ‘운석과의 충돌’이지만, 본질적인 원인은 바로 ‘먹이사슬’이라는 공생관계(생존기반)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생존기반을 스스로 보호하지 않는 집단은 결국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연과 인류의 역사에 일관되게 통하는 교훈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세계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자신의 생존기반과 함께 상생하기 위한 ‘기업 생태계’(Business Eco System) 구축에 힘쓰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기업 생태계 개념은 기존의 노사관계, 대ㆍ중소기업 관계는 물론 소비자, 정부당국, 법 제도 등 거의 모든 기업환경을 포괄한다.
이제는 기업 생태계간 경쟁이다
최근 방한했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현대ㆍ기아차와 차량용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협력에 관한 제휴를 맺고, 서울시와 저소득층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들 제휴는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빌 게이츠 회장이 밝힌 제휴 목적을 자세히 뜯어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생태계’다. MS는 현대기아차와 차량 IT분야의 ‘기술 생태계’ 구축을 위해, 서울시와는 저소득층 교육환경 개선 및 ‘클린 소프트웨어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제휴를 맺었다고 밝혔다.
MS가 아무리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한들, 이를 사용할 수 있는 협력업체와 소비자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모두 MS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 집단에 포함시켜 함께 발전해가자는 것이 MS의 ‘파트너 생태계’정책이다.
MS가 글로벌 시장에서 자신의 생태계에 포함시킨 파트너 수는 올해 현재 84만개를 넘어선다. 이들 파트너에게는 아낌없는 지원이 이뤄지는데, 빌 게이츠 회장은 “우리가 1달러를 벌면 약 8달러는 우리와 관계를 맺고 가치를 창출하는 파트너에게 돌아간다”라고 말 바 있다.
올해 1~3월 MS의 매출액이 114억5,000만달러임을 감안하면, 같은 기간 MS생태계 전체가 벌어들인 가치는 900억달러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MS는 건강한 생태계 구축을 위해 매년 수십억달러씩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수많은 사업기회를 창출한다. 한 기업을 중심으로 거대한 경제권이 형성된 셈이다.
MS 뿐만 아니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각자 자신만의 파트너 생태계를 구축하고,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인다. 일부 기업의 경우 파트너 프로그램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기도 한다. 기업과 기업간 경쟁이 아닌, 기업 생태계와 기업 생태계간 경쟁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HP는 2002년 파트너 생태계 프로그램을 통합하고 ‘파트너 원’(Partner One)이라는 브랜드를 붙였다. HP의 마크 허드 CEO는 “HP가 글로벌 시장에서 14만개의 파트너들과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MS는 파트너 센트릭(Partner Centric), IBM은 파트너 월드(Partner World)로 자신들의 생태계를 브랜드화했다.
이들이 파트너 생태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그만큼 글로벌 시장경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MS나 인텔 같은 세계적 대기업들도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계시장에서 홀로 경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근래 최고의 히트상품 중 하나인 ‘아이팟’ 역시 애플의 파트너 생태계를 통해 탄생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이팟의 아이디어는 벤처사업가 토니 바델이, 제품설계와 견본작업은 파트너사였던 포털 플레이어가 맡아 진행했다. 애플은 자신의 개방적 생태계를 통해 좋은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신속히 상품화에 활용했다. 이 같은 파트너 생태계의 활용은 IT산업에서 먼저 시작됐으나, 점차 굴뚝산업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기업생태계의 리더,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
제임스 무어는 1998년 그의 저서 <경쟁의 종말> 에서 자연 생태계 개념을 경제환경에 적용해 ‘기업 생태계(Business Ecosystem)와 공동진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바 있다. 경쟁의>
그는 책에서 “앞으로 경제계는 개별기업간 경쟁에서 시스템간 경쟁으로, 다시 기업생태계간 경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정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자신이 속한 생태계의 경쟁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의 예견은 정확히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소위 ‘샌드위치 위기론’ 원인 역시 바로 취약한 기업생태계에서 찾아야 한다. LG경제연구원 박세정 연구원은 “그간 국내 대ㆍ중소기업 관계는 저임금 고리에 치우쳐 혁신기술기반의 중소기업이 나오기 힘든 척박한 생태계였다”며 “결국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 대신 일본과 중국에 점차 많은 부분을 의지하게 된 것이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정일 수석연구원은 “국내에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라며 대기업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 ‘종(種) 다양성’을 보장하는 기업 생태계가 곧 미래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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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 100년된 글로벌 기업 노사 相生문화가 장수비결
205년(듀폰), 170년(P&G), 139년(코닝), 70년(도요타), 68년(HP)…
주요 글로벌 장수기업들의 올해 나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수명은 30년을 넘기기 힘든 것이 현실. 2005년 말 기준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의 평균 수명은 32.9년, 코스닥 등록기업은 16.7년으로 전체 평균은 23.8년에 불과하다.
또한 포천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도 약 40년 정도인데, 이들 기업은 60년 이상 장수하면서도 업계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들의 장수비결은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안정된 노사상생 관계’에 주목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정일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장수기업들은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노사상생의 문화를 일관되게 구축한다는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다”며 “노사관계가 안정적일수록 더 높은 성과를 실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장수기업의 노사정책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직원존중을 기업의 핵심가치로 내세우고 제도화했다는 것. 최장수 기업인 듀폰은 “위대한 세계적 회사는 인재를 소중히 함으로써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경영이념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P&G는 1880년부터 주5일 근무제를, 1887년부터 직원 이익분배제를 도입했으며, 지금은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스톡옵션제를 실시하고 있다.
둘째, 노사신뢰를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HP는 1970년께 경기침체로 10% 인력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인원감축 대신 업무시간 단축(2주당 1일 감소)과 급여삭감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코닝은 1982년 일본업체들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자, 노조의 동참 아래 노사 자율작업팀과 전사적 이익분배제도 등을 도입해 위기를 헤쳐나갔다. 도요타 역시 1950년 직원 1,500명을 대량 해고할 당시, 경영진이 고용안정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원 사퇴하면서 ‘노사=동반자’ 인식을 확립했다.
셋째, 현장 위주의 조직관리 체계다. 노사갈등의 대부분은 노동자와 회사의 갈등이 아니라 노동자와 현장 관리자의 갈등이기 때문에, 불만이나 문제점을 현장에서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도요타, 코닝, HP 등은 현장관리자를 선발하는 기준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동시에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현장관리자 자질을 높이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 기업은 ‘다양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여성이나 흑인 등 취약계층이 일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한다는 의미다. 코닝은 국적, 인종, 성 측면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회사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이 회사는 잡지 <워킹엔지니어> 가 선정한 ‘여성엔지니어들이 일하기 원하는 최고의 기업’으로, 잡지 <블랙컬리지안> 이 선정한 ‘흑인을 위한 최고기업’으로 뽑혔다. 이정일 연구원은 “국내에도 동남아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다양성 보장을 위한 이들 기업의 노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블랙컬리지안> 워킹엔지니어>
문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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